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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Feb 22. 2021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_Sera

2W매거진 8호 <모자람의 쓸모>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8호 <모자람의 쓸모> 편에 Sera작가의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방치니, 학대니 그런 걸 모르고 컸다.
이런 생활이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절 보내고 나서 글을 쓰며
종종 유년의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요즘 엄마의 무서운 꿈 이야기를 메모하고 있다. 엄마 인터뷰를 두 번 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문득 마음 한구석이 일렁였다. 엄마와의 관계를 좀 더 염두에 두고 써야겠다고 생각해서일까. 나의 옛이야기들이 다양한 조각으로 소환되었다. 꼬박 하루를 작정하고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설거지할 때, 국을 끓일 때, 커피를 마실 때, 그리고 자기 전, 일렁이는 바람은 어느새 크기가 커져 있다. 그림책에서 종종 나오는 커다란 ‘블랙독’처럼 말이다.


“언니들이 내가 칭얼대니까 장롱에 가두고 자기네끼리 좋아했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글쎄 마흔이 넘은 동생이라는 작자가 친정에만 오면 막내라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동생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장롱에 가둘 리는 없을 테고. 그러고서도 좋아했다면 분명 장난이었을 텐데 어린 막내에게는 공포였나 보다. 대체로 우리 세 자매끼리는 매우 즐거웠던 시절로 남은 유년이었다. 그러나 우리 막내에게는 ‘언니들한테 구박받았다.’로 각인되어 있으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을 텐데 내가 생각하는 그때와 동생이 생각하는 그때의 감정이 다르게 새겨져 있었다. 특히, 동생의 그 한 문장 '나를 가뒀어'를 듣고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내가, 꼬마 성혜가 그럴 리가. 기억을 더듬어보고 이리저리 굵직한 사건을 뜯어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여덟 살 때쯤일 것이다. 나는 먼 길을 혼자서 등‧하원 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한참 돌아 나가 30분이나 가야 나오는 국민학교를 다녔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 오전에만 계신 할머니가 내가 들어오기 바쁘게 나갔다.

외할머니든 친할머니든, 두 할머니께도 우리는 버거웠을까. 늘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한 둘째 동생은 학교 다녀오면 어린이집을 쏙 빼먹고 앉아 있었다. 2시부터 우리 셋은 엄마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동생들과 가장 많이 한 놀이는 실에 과자를 매달아 높이에 따라 과자를 입으로만 따먹고 돌아오는 놀이였다. 어린 동생들이 좋아하는 과자도 먹고 몸도 움직이는 1석 2조의 놀이다. 그리고 2개 있는 바비인형을 돌려가며 가지고 놀았다. 분명 미미도 있었는데 루비와 미미는 바비에 비하면 세련미가 떨어져서 늘 찬밥이었다. 시간아 흘러라, 지루할 때쯤 나가서 소꿉놀이 했다. 벌건 돌을 빻아 밥을 짓고 있으면 어느샌가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가지각색 초록 잎들과 가루가 된 벌건 흙은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었다. 그러다 해가 질 때면 동생들을 챙겨 집에 쏙 들어왔다. 동네 오빠와 친구들이 우리를 붙잡았지만, 빛이 사그라지면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엄마가 계신 날이면 우리를 찾으러 나오기 전엔 절대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엄마는 아빠가 교통사고로 보훈병원에 입원한 탓에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먼 병원까지 다녔다. 약 2년간을 그렇게 생활하셨다. 실컷 놀다 지친 우리는 엄마가 챙겨준 반찬과 할머니가 해준 밥을 덜어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데울 수가 없어 늘 차가운 반찬을 먹었다. 그렇게 8시쯤 되면 파김치인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형태의 엄마가 돌아왔다. 얼마나 힘든 날들이었을까? 이제서야 미루어 짐작해본다.

방치니, 학대니 그런 걸 모르고 컸다. 이런 생활이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절 보내고 나서 글을 쓰며 종종 유년의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방치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나는 최선을 다했어. 동생들을 챙겼고 놀이를 만들었고 밥도 차렸어. 엄마의 손을 빌리지 않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대책 없이 칭얼대는 막냇동생이 몹시 성가시고 짜증났겠지.


그래, 어쩌면 동생의 기억보다 더 많이 장롱에 가둔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일렁임은 거짓말을 안 했다. 왜 동생의 한 마디에 흔들렸는지 기억을 더듬으니 버거웠던 8살짜리 꼬마 성혜가 있었다. 동생이 그렇게 말하니 내 안에 있던 어린 성혜가 억울했던 모양이다.

나에게 언니가 있다면 언니에게 많은 것을 원하거나 탓하거나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언니가 있어 준다면 팽팽한 신경 줄이 조금은 느슨해지고 '해야만 한다.'가 '한 번쯤 안 해도 되겠지.'로 나에게 거는 주문이 달라졌을 테니까. 나는 동생들에게 분명 화내고 짜증내는 언니였을 테지만 나로 인해 동생들이 밥은 먹고 컸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한 한 시절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 주기를.






[작가 소개] Sera(박성혜)

영등포에서 살아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딸과 밥은 왜 먹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아들과 살고 있어요. 그림 책방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요. 가끔 글을 쓰고 자신 없지만 주목받고 싶은 ‘레이디버드’를 품고 있어요.




필진들의 추천 글


"최근 친구와 나눈 이야기 중 ‘첫째는 하늘이 내린다’는 표현이 있다. 개인적으로 요즘 많이 생각하는 주제와도 연결된 내용이라 마음에 이 글이 오래 맴돌았다"


"많은 가정에서 첫째 자녀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책임감과 버거움을 다 겪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신 담담함이 와닿습니다."


"똑같은 일에 대한 어른들의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참... 여러 불행이 발발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그런데, 어린 꼬맹이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그럴수 있네요. 힘들게 왕복 4시간을 오고 간 그때의 지은이 엄마도 안쓰럽고, 어린 나이에 동생돌보랴 집안챙기랴 어린 그녀도 안쓰럽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겪어낸 그대들에게, 토닥토닥 조용히 안아주고싶네요."


"서로의 존재가 곧 나의 모자람의 이유가 되는 관계가 있다면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매나 형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니는 동생 때문에, 동생은 언니 때문에 물리적이든 감정적이든 늘 부족함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 역시 같은 경험을 두고서도 다른 기억을 하고 있는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언니는 그저 장난에 불과한 놀이였지만 동생은 공포를 느꼈단 뒤늦은 고백은 단지 기억이 모두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동생의 모자람을 언니가 조금이나마 채워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언니라는 이유로 모자람 대신 단단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을 넘치게 느껴야 하는 삶도 녹록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


"아이에게도, 언니가 없는 지금의 시간이 혹시 부족함일까 하는 마음, 여섯 살 터울이 난다고 동생이랑 놀아주라고 말하는 엄마 아빠가 미울까 싶은 마음. 그래도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 시간들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까지요. "




이 작품은 2W매거진 8호 <모자람의 쓸모>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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