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바닷속을 여행하는 이유

여행은 삶을 따라 계속된다

by 홍아미

어느 여름, 오키나와의 바다

“만타(대형 가오리)다!” 달뜬 외침이 들렸고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여기는 이시가키 섬 다이빙 보트 위. 세 번째 다이빙을 기다리고 있다. 이시가키 섬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섬으로 대형 가오리를 볼 수 있는 유명 다이빙 포인트다. 만타는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카비라 만으로 목욕을 하러 온다. 목욕 시간은 약 15분 정도라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바다로 뛰어든다. 다 큰 어른들이 물 위에 동동 떠서 만타의 목욕을 숨을 죽이고 구경하는 모양이 재밌다.

16_%EC%98%A4%ED%82%A4%EB%82%98%EC%99%80_%EC%9D%B4%EC%8B%9C%EA%B0%80%ED%82%A4%EC%84%AC_%2812%29.JPG?type=w740 ⓒ ABC dive


입수 준비를 알리는 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차, 산소통을 짊어지고 짙은 민트색 물속으로 뛰어든다. 오키나와 바닷속에는 처음 보는 열대어가 많다. 몸이 네모난 상자처럼 생기거나 입이 부리처럼 길쭉한 물고기, 째려보는 것처럼 눈이 밉살스럽게 생긴 물고기... 수족관을 난생처음 찾은 아이가 되어 손톱만 한 물고기 하나의 점, 선, 색을 그림 그리듯 찬찬히 들여다봤다.

20분쯤 지났을까. 오키나와 바닷속 세상에 흠뻑 빠져 있다가 옆을 봤는데 커다란 바다거북이 무심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바다거북과 속도를 맞추었다. 오랜 시간 함께 바다를 누볐던 동료처럼. 눈앞의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꿈속인양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16_%EC%98%A4%ED%82%A4%EB%82%98%EC%99%80_%EC%9D%B4%EC%8B%9C%EA%B0%80%ED%82%A4%EC%84%AC_%288%29.JPG?type=w740 ⓒ ABC dive


40분간의 다이빙을 마치고 갑판 위에 누웠다. 전원이 나간 듯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난밤, 낯선 침대에 누워서도 찌든 때처럼 버려지지 않는 생각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대신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호기심이 갔고 좋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오랜만에 나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다이빙을 하러 온 거지.

16_%EC%98%A4%ED%82%A4%EB%82%98%EC%99%80_%EC%9D%B4%EC%8B%9C%EA%B0%80%ED%82%A4%EC%84%AC_%287%29.JPG?type=w740 ⓒ ABC dive

세계의 바다를 여행한다는 것


스쿠버다이빙에 빠지게 된 건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웠고, 물속에서 마음이 가장 편했다. 때문에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 전부터 나는 바닷속을 탐험하는 이 액티비티를 좋아하게 될 것을 알았다.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태국의 한 섬에서 오픈워터 코스를 밟았고, 선생님은 나에게 다이빙을 차분하게 잘한다며, 훌륭한 다이버가 될 거라고 칭찬했다. 자격증을 딴 이후, 틈날 때마다 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유명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 지역의 다이빙 적기를 수시로 체크했고 일상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했을 때면 바닷속이 그리워졌다.

*오픈워터 코스 : 스쿠버다이빙의 입문 자격증 코스

다이빙을 배운 후 여행을 떠나기는 더 쉬워졌다. 세계지도를 펼쳐 이 시기에 다이빙하기 좋은 지역을 고르고, 그 지역의 맛집이나 괜찮은 숙소를 알아본다. 본디 관광 체질이 아닌지라, 하루 일정은 다이빙 2~3번과 맥주와 독서 정도. 바다에서 노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여행지에서 생각했다. 다이빙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영영 나는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겠지. 세계의 바다를 찾아 여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지. 바닷속에 눈을 뜨고선 세계지도를 보는 나의 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17_%ED%83%9C%EA%B5%AD_%ED%94%BC%ED%94%BC%EB%8B%A4%EC%9D%B4%EB%B9%99_%283%29.JPG?type=w740 ⓒ 양주연

40분의 여행으로 바뀌는 것들


각기 다른 매력의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 떠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스쿠버다이빙의 진짜 매력은 손쉽게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수심 깊은 물속에서는 오직 들숨과 날숨으로 내 몸의 평형을 유지해야 한다. 길고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일종의 명상인 셈이다. 그리고 40여분 간의 다이빙이 끝난 후 수면으로 올라온 순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긴장이 씻겨나간 자리를 내 안에 있던 호기심, 다정함이 대신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잊고 있던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40분 만에 일상의 나에서 여행자로 스위치를 변경할 수 있다니, 굉장한 효율의 여행 방식 아닌가!

이렇게 다이빙을 열심히 찬양했으나, 사실 모두에게 스쿠버다이빙을 권할 순 없다. 나에겐 40분의 여행이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수심 10m 아래에 갇혀 있는 지옥 같은 시간이란 것을 안다. 운 좋게 스쿠버다이빙이라는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여행 방식이자 취향을 찾았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음악이나 그림 혹은 등산일 수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지도는 또 완전히 다른 색일 것이다.

17_%ED%83%9C%EA%B5%AD_%EB%9D%BC%EC%9D%BC%EB%A0%88%EC%9D%B4_%2857%29.JPG?type=w740 ⓒ 양주연


반 년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선 여행 권태기가 온 적 있었다. 대륙이 바뀌었는데도 풍경이 비슷비슷해 보이고 어딜 가든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때 '당분간은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이빙을 배우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나는 어느새 기대하고, 놀라워하고, 느끼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앞으로 바뀔 취향이 나를 세계 어디로 이끌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떠남의 방식이 바뀔 뿐,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여행은 삶을 따라 계속될 것이란 예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이의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