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2W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아미 Apr 18. 2022

아파서, 너무 아파서_윤준가

나 미레나 넣었어 1


     

지난 설 연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명절 당일에 딱 월경이 겹쳤다. 나는 월경을 시작할 때 갈색 피가 하루 이틀 조금씩 비치다가 곧 본격적으로 붉은 피가 나오면서 월경통을 겪는다. 피가 많이 나올수록 월경통도 심해지는데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온수주머니를 배에 댄 채 끙끙거리며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월경통 때문에 명절 인사 못 가겠어. 그냥 집에 쉴게요.” 일단 엄마는 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이후 엄마와 이모가 번갈아 내게 전화를 해서는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루프를 추천했다.

 

“야, 그거 나도 옛날에 다 해봤는데, 진짜 별거 아냐. 그냥 넣으면 끝이야.”

“아니 나는 자궁에 넣는 거니까 좀 무서워서….”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던데?”


안 그래도 이미 몇 년 동안이나 미레나 삽입을 고민해 오던 차였다. 가족들의 추천도 있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 월경 주기가 끝날 무렵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서 미레나 시술을 알아보았다. 




여성만이 겪는
신체적·의료적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미레나는 자궁 삽입형 피임기구이지만 나는 온전히 월경통 경감 목적으로 미레나를 넣었다. 정자를 가진 인간과 섹스를 하지 않은 지 벌써 수 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피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만약 월경통도 줄이고 피임도 하려는 여성이 있다면 미레나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꼬박꼬박 피임약을 챙겨 먹는 것은 너무 번거롭고 까먹기도 쉬울뿐더러 흡연을 하는 35세 이상의 여성이라면 혈전 위험성이 높아 피임약을 먹을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매우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피임약을 먹은 게 너무 오래전이라 신경을 못 쓴 것도 있겠지만 처방받은 피임약을 먹을 때도 의사나 약사에게서 한 번도 그런 복약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35세 이상이며 흡연을 하는 여성이 여럿 있고 그러면 이 모든 친구들이 피임약을 먹지 못한다는 건데, 왜 그동안 나는 이렇게 상식적인 주의사항을 알지 못했는지 놀라웠다. 피임약이 피임에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월경주기 조절이나 부정출혈 치료 등 다양한 자궁 관련 증상 조절에 두루 쓰인다. 혹시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던 걸까 싶어서 트위터에 썼더니 리트윗이 꽤 많이 되고, 전혀 몰랐다는 메시지가 여럿 도착했다. 그래 자꾸 이런 식이다. 여성만이 겪는 신체적·의료적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내 뒤의 여성 한 명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



미레나를 포함한 각종 루프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미레나를 알게 된 건 벌써 10년 전이지만 그동안 겁을 먹고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확한 정보를 알기가 힘들고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다고 하니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변에 그걸 넣었다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먼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도 전혀 없었다. 최근 엄마와 이모가 내게 루프를 추천한 것도 하필이면 명절에 아파 가족 모임을 깼기 때문이다. 아마 그 명절이 아니었으면 엄마와 이모의 루프 경험을 계속 몰랐겠지. 알 수 없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예측되지 않는 미지의 것에는 으레 불확실의 공포가 뒤따르고 이는 곧 나를 속박하는 장치였다.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어찌 보면 부끄럽고, 혹자는 남우세스럽다고 할 만한 나의 생식기 사정에 관해 왜 자세히 기록할 마음을 먹었는가? 이 글로 인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여성이 미레나에 대해, 각종 피임 방식과 월경 도구에 대해 알게 된다면 미지에 대한 공포는 한결 덜할 것이다. 내 몸으로 겪어낸 정보가 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이 경험은 작은 줄기가 되겠지. 여기에 다른 여성의 경험이 입혀지고 또 덧입혀지면 이는 커다란 강물도 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큰 바다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 세대의 여성들 앞에는 분명히 더 많은 선택지가 놓일 것이다. 남몰래 배를 싸안고 아픔을 참아야 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내 뒤의 여성 한 명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이는 이 마음을 인류애나 공감, 혹은 기록욕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마음을 페미니즘이라 부르고 싶다. 



>> <미레나를 넣어봤더니>에서 더 자세한 내용 보실 수 있습니다. 



글_윤준가

주로 다른 이의 글을 다듬고, 종종 내 글을 쓴다. 아주 드물게 그림을 그리는데, 장래희망이 그림책 할머니라서다. 현재 가장 가까운 목표는 그림책 완성과 개 입양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프리랜서가 됐고 출판사 말랑북스를 운영한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대체로 가난해서≫, ≪바다로 가자≫, ≪Bones and flesh≫, ≪파는 손글씨≫, ≪한동리 봄여름≫, ≪우정보다는 가까운≫을 쓰거나 엮었으며 ≪엄마가 알려준다≫, ≪밥상 위의 숟가락≫을 발행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리통! 인류의 절반이 겪는 문제인데, 왜 아직도 쉬쉬 하는 분위기인 걸까요. 20년 가까이 극심한 생리통을 겪어온 한 여성이 이에 대한 경험담을 풀어놓습니다. 결국 생리통을 극복하기 위한 최후 방법으로 미레나 시술을 선택한 윤준가 작가! 혹시 미레나 시술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작가님께 물어보세요! 질문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2W매거진 두여자엽서'를 보내드립니다!

>>질의링크 https://forms.gle/R8AAi6WcYYXQ8tUc9




매거진의 이전글 드므, 나의 이름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