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매거진 22호 <반려에 대하여>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22호 <반려에 대하여> 편에 김윤 작가의 '나보다 나를 더 믿는 한 사람'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가 방황하고 있다면
그곳이 우주 끝이라고 해도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당신을 구할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퇴사를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수없이 갈팡질팡했다. 출근길의 마음과 퇴근길의 마음이 달랐고, 금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 기분이 달랐다. 그렇게 수개월 오락가락하던 나를 남편이 붙잡았다.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미래를 도모해도 된다고 그는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말했다. ‘다시는 이 정도의 연봉을 주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나의 두려움을 비웃었다. 남편은 내가 연봉이나 명함과 같은 정해진 틀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만큼의 응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해서는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소위 ‘범생이’ 인생을 살았다. 대학을 갔고, 졸업 후에는 취직을 했으며,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일 년 뒤 아이를 낳았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에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여직원이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타야 했고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떠나는 입장은 두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온 마음으로 지지했다. 백만 원이라도 더 벌어오라고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해야 하는 ‘일’은 네가 원하는 일이길 바란다고, 오로지 ‘돈을 위해’ 일을 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단 한 번도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거나 뿌듯한 적이 없었던 나는 그래도 버텨야 하지 않을까 오래 갈팡질팡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내가 걱정하는 지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서도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응원을 보탰다. 내 선택이 옳다는 사실을 함께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힘이 났다. 또한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반려인이다. 팍팍한 현생을 살면서도 배우자에게 한 번뿐인 인생 살면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기를 권할 줄 아는 사람. 나는 아마도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속을 들여다본다 해도 결코 알 수 없는, 그의 커다란 몸보다 더 큰 마음이 어딘가에 있다. 나는 그 마음을 먹고 쑥쑥 자랐다. 십 년 사회생활도, 매년 새끼손톱만큼 올랐던 연봉도 아닌 내 곁에 있는 그 사람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기쁨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진로의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것을 혼자 하기도 하고 여럿이 같이 하기도 한다. 함께 글쓰기를 했던 언니는 우리가 비록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가 될 수는 없지만,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하자 그가 무심하게 툭 말했다.
“나는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가 누군지 모르지만, 너를 잘 알아. 내가 아는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렇게 나는 그이 앞에서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된다. 비록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고 가슴팍엔 그 어떤 이름표도 없지만, 그는 나를 언제나 치켜세워준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한 사람. 그 존재는 우주보다 크고 넓어서 남편을 생각하면 마치 온 세상이 나를 응원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좋은 기운들이 나를 향해 마구 달려왔다.
누군가 내게 글쓰기에 꼭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과대평가해주는 사람들이요.”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_이하루
글쓰기를 독려하는 에세이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에는 ‘나보다 나를 더 과대평가해주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백 프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다. 나보다 나를 더 과대평가해주는 사람은, 나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글쓰기든 뭐든 기꺼이 잘 해내고 싶다. 기꺼이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이미 지나간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내일의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 내가 어딜 다녀오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적당한 관심으로 물어봐 주는 사람. 그의 직장이 우리 집으로부터 50km나 떨어져 있지만 그 존재는 언제나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어느 날 내가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는 일이 생겨도, 테러 단체에 납치를 당해 어딘가에 끌려가도, 내비게이션이 먹히지 않는 어디 시골 산길에 갇히는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해도, 그가 나를 구하러 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 망망대해 바다에 둥둥 떠 있다고 하면 그는 헤엄을 쳐서라도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그런 믿음은 대단하고 강력하다.
나도 그에게 훌륭한 반려인이고 싶다. 내가 받은 만큼 나 또한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함께 살아가다가 남편이 넘어지는 날이 온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일으켜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방황하고 있다면 그곳이 우주 끝이라고 해도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당신을 구할 것이다.
글_김윤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다음 생에도 나로 태어나고 싶도록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인스타 @kimyoon_space @kimyoon_books
[Mini Interview] 김윤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윤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지금은 두 딸을 키우며 육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성 창작자를 위한 글쓰기 모임이라니, 제가 바라던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남녀차별이 당연시되는 회사를 다니면서 ‘여성 연대’와 같은 것들을 갈망했거든요. 이곳에서는 제 글을 조금 더 잘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투고했더니 오늘처럼 이런 기쁜 날이 오네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쓰고 싶은 마음을 한 편의 글로 잘 풀어냈을 때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한 것만 같아서 뿌듯합니다. 반면에 그런 내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상상하면 두려운 마음이 되고요. 글을 쓰는 일은 용감한 행위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2W매거진 마감일은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요. 한 달이 훅훅 가는 기분이 들때 아주 조금 슬프기도 하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남자와 여자를 무던히도 구별하고 여직원에게는 수동적인 역할만을 강요한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쓴 글을 지금 읽어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구요. 기회가 된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해보고 여성의 목소리를 낸 글을 써보고 싶어요. 내가 겪은 것들이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두 딸을 둔 엄마로서 차별을 묵인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으므로 단단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필진들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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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과대평가해주는 사람들'이라는 표현 너무 좋았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가 읽어보고 싶어졌고요. 작가님의 반려인을 살짝 닮은 제 반려인에 대해 쓰다가 시간이 부족해 못 냈거든요. 잘 마무리해 두긴 했으니 작가님 글과 함께 보여주려고요. 제 글을 본 제 반려인의 반응도 궁금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본 작가님의 반려인 반응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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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인 남편에 대하여 쓰신 김윤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나도 우리 남편을 떠올렸다. 우리 남편은 작가님 남편과는 달리 냉철한 시각을 보유하고 있어 내가 중요하게 글을 써야 할 때면 그에게 글에 대한 평을 부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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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님의 글 <나보다 나를 더 믿는 한 사람>에서는 남편분의 표현 하시는 부분이 시인 같기도 배우 같기도 했어요. 경상도라 표현할 줄 모르는 저희 부부는 이 세계 사람의 언어가 아닌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은 거하고 살아." 남편이 제게 이런 말을 해 준다면 전 아마 기쁨에 겨워 죽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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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스윗한 남편이라니. 츤데레 남편을 둔 나는, 이런 말을 정말 해주는 남편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하하. 부러워서 그런다. (김윤 작가님은 브런치에 남편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도 하는데 읽을 때마다 놀란다. 역시 부럽다).
*이 글은 2W매거진 22호 <반려에 대하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거진 정가는 3000원이며 수익금은 여성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데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