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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May 27. 2023

일요일엔 선데이마켓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6


치앙마이에서 처음 맞는 일요일이다. 평일에도 별일 안하지만 왜인지 일요일에는 더 적극적으로 게을러져야 할 거 같아서, 오늘 오전에는 근처 카페도 나가지 않았다. 오전 내내 숙소 침대에서 뒹굴며 전자책을 읽다가 숙소앞 과일가판대에서 25밧 주고 사온 포멜로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커피 한 잔. 선선한 아침 바람이 기분 좋다. 







일요일은 그 유명한 선데이 마켓 열리는 날. 전날의 패착을 기억하며 오후 4시쯤 천천히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차나 바이크를 렌트하지 않고(이유: 나 초보운전, 남편 면허 없고 겁 많음) 오직 그랩이나 볼트 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르곤 하는데, 12월의 치앙마이는 하이시즌이라 교통체증이 엄청나고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 님만해민은 그래도 시내 쪽이라 잘 잡힐 거라 생각했는데, 교통편 찾는 게 이렇게 고역일지 생각도 못했다. 결국 큰길가로 나가 툭툭을 잡아타고 바로 타패게이트 쪽으로!(흥정 않고 100밧)




4시 반쯤 도착하니 슬슬 장이 열리고 있는 분위기였다. 아직 시작 전이라 인파도 적고 해서 슬렁슬렁 구경하는데, 점점 뭔가가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 뭔가가 뭐냐 하면 저 아래에서 깨어나는 물욕의 신! 남편도 동의하는 바지만, 나는 평소 물욕이 없고 쇼핑도 귀찮아하는 편이다. 특히 사람 많은 쇼핑몰이나 백화점 돌아다니는 일은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 피곤하고 기빨리는 일이다. 심지어 꼭 필요한 장보기 마저도 자꾸만 뒤로 미룰 때가 많다(거의 남편 차지). 



그러니 이렇게 뭔가를 사고 싶어 드릉드릉 하는 경우는 몇 년에 한 번 손에 꼽힐 만한 경우라는 얘기다. 나는 아예 남편에게 선언을 해버렸다. “나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살 거야. 말리지 마.” 그리고 60밧짜리 용량 큰 에코백을 하나 사서 거기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선데이마켓은 과연 멋진 시장이었다. 올드타운의 동문(타패게이트)에서 서문을 횡단하는 길 전체를 통제하고 열리는 시장인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메인로드의 양쪽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들. 가운데는 예술가들(가수, 화가 등)이 자리를 잡고 간간이 공연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중간중간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관광객들 지치지 말고 쇼핑하라고 노상 마사지숍이 열린다. 30분에 80밧~100밧이면 받을 수 있다. 아주 짧고 굵게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풋마사지 한 번 받아주면 금세 다시 쇼핑할 힘이 생긴다. 사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건 메인로드에서 연결된 사원 안쪽에 마련되는 먹을거리 파는 야시장! 우리가 본 곳만 대여섯 곳 이상 되었는데, 저렴한 태국음식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주는 스시, 바로 화덕에서 구워내오는 피자 등 식당을 그냥 통째로 옮겨온 듯한 규모였다. 




물욕의 신뿐만 아니라 식욕의 신마저도 깨어났는지, 여기서 저녁을 2번 먹음. 쇼핑시작할 무렵 망고라이스와 국수 등으로 간단히 먹고 시작했는데 한 두어시간 후 배가 꺼져서 또 다른 야시장에서 족발덮밥 등 저녁을 또 먹었다. 




쇼핑하고, 풋마사지도 받고, 밥 두 번 먹고... 한 4시간을 그렇게 돌아다녔더니 녹초가 됐다. 한 7-8시 즈음에는 인파가 너무 몰려서 더 지쳤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타패게이트 쪽으로 와서 볼트 택시를 부르려고 했더니 이번에도 잡기가 쉽지 않다. 그 앞에 대기타고 있는 툭툭 기사들에게 님만해민 얼마냐고 문의했더니 트래픽잼 때문에 300밧은 줘야 한다고 튕긴다. 아무리 차가 막혀도 그렇지 5-6km 거리 가는데 300밧이라니.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 결국 100밧에 가주겠다는 툭툭 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숙소로 컴백했다. 




선물용 장신구들, 미니 노트 세트, 커피 원두, 코끼리바지 3벌, 원피스, 투피스, 선물용 애기옷, 숙소에 둘 포푸리 방향제 세트, 에그타르트, 코코넛파이 기타 등등


오늘의 전리품을 모아놓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10만원어치도 안되는 소소한 쇼핑이지만, 사실 쇼핑에서 중요한 것은 기분이다. 이걸 사서 내가 얻은 기쁨이 더 크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치앙마이 선데이마켓은 사랑이다.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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