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요일엔 선데이마켓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6

by 홍아미


치앙마이에서 처음 맞는 일요일이다. 평일에도 별일 안하지만 왜인지 일요일에는 더 적극적으로 게을러져야 할 거 같아서, 오늘 오전에는 근처 카페도 나가지 않았다. 오전 내내 숙소 침대에서 뒹굴며 전자책을 읽다가 숙소앞 과일가판대에서 25밧 주고 사온 포멜로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커피 한 잔. 선선한 아침 바람이 기분 좋다.


SE-4b71ac62-75d8-11ed-a4bf-f9bec6bd7ae6.jpg?type=w773






일요일은 그 유명한 선데이 마켓 열리는 날. 전날의 패착을 기억하며 오후 4시쯤 천천히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차나 바이크를 렌트하지 않고(이유: 나 초보운전, 남편 면허 없고 겁 많음) 오직 그랩이나 볼트 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르곤 하는데, 12월의 치앙마이는 하이시즌이라 교통체증이 엄청나고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 님만해민은 그래도 시내 쪽이라 잘 잡힐 거라 생각했는데, 교통편 찾는 게 이렇게 고역일지 생각도 못했다. 결국 큰길가로 나가 툭툭을 잡아타고 바로 타패게이트 쪽으로!(흥정 않고 100밧)



SE-4b71d376-75d8-11ed-a4bf-1fb8aa2181d3.jpg


4시 반쯤 도착하니 슬슬 장이 열리고 있는 분위기였다. 아직 시작 전이라 인파도 적고 해서 슬렁슬렁 구경하는데, 점점 뭔가가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 뭔가가 뭐냐 하면 저 아래에서 깨어나는 물욕의 신! 남편도 동의하는 바지만, 나는 평소 물욕이 없고 쇼핑도 귀찮아하는 편이다. 특히 사람 많은 쇼핑몰이나 백화점 돌아다니는 일은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 피곤하고 기빨리는 일이다. 심지어 꼭 필요한 장보기 마저도 자꾸만 뒤로 미룰 때가 많다(거의 남편 차지).



그러니 이렇게 뭔가를 사고 싶어 드릉드릉 하는 경우는 몇 년에 한 번 손에 꼽힐 만한 경우라는 얘기다. 나는 아예 남편에게 선언을 해버렸다. “나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살 거야. 말리지 마.” 그리고 60밧짜리 용량 큰 에코백을 하나 사서 거기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SE-4b7248b5-75d8-11ed-a4bf-2b871683a759.jpg?type=w773


선데이마켓은 과연 멋진 시장이었다. 올드타운의 동문(타패게이트)에서 서문을 횡단하는 길 전체를 통제하고 열리는 시장인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메인로드의 양쪽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들. 가운데는 예술가들(가수, 화가 등)이 자리를 잡고 간간이 공연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SE-4b7248b7-75d8-11ed-a4bf-fd80dc51f151.jpg?type=w773


중간중간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관광객들 지치지 말고 쇼핑하라고 노상 마사지숍이 열린다. 30분에 80밧~100밧이면 받을 수 있다. 아주 짧고 굵게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풋마사지 한 번 받아주면 금세 다시 쇼핑할 힘이 생긴다. 사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건 메인로드에서 연결된 사원 안쪽에 마련되는 먹을거리 파는 야시장! 우리가 본 곳만 대여섯 곳 이상 되었는데, 저렴한 태국음식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주는 스시, 바로 화덕에서 구워내오는 피자 등 식당을 그냥 통째로 옮겨온 듯한 규모였다.


SE-4b71fa89-75d8-11ed-a4bf-c7e0314c44ad.jpg?type=w773



물욕의 신뿐만 아니라 식욕의 신마저도 깨어났는지, 여기서 저녁을 2번 먹음. 쇼핑시작할 무렵 망고라이스와 국수 등으로 간단히 먹고 시작했는데 한 두어시간 후 배가 꺼져서 또 다른 야시장에서 족발덮밥 등 저녁을 또 먹었다.


SE-4b726fcc-75d8-11ed-a4bf-5768a25634df.jpg?type=w773



쇼핑하고, 풋마사지도 받고, 밥 두 번 먹고... 한 4시간을 그렇게 돌아다녔더니 녹초가 됐다. 한 7-8시 즈음에는 인파가 너무 몰려서 더 지쳤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타패게이트 쪽으로 와서 볼트 택시를 부르려고 했더니 이번에도 잡기가 쉽지 않다. 그 앞에 대기타고 있는 툭툭 기사들에게 님만해민 얼마냐고 문의했더니 트래픽잼 때문에 300밧은 줘야 한다고 튕긴다. 아무리 차가 막혀도 그렇지 5-6km 거리 가는데 300밧이라니.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 결국 100밧에 가주겠다는 툭툭 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숙소로 컴백했다.



SE-4b726fcd-75d8-11ed-a4bf-8d03c8b7eeb0.jpg?type=w773


선물용 장신구들, 미니 노트 세트, 커피 원두, 코끼리바지 3벌, 원피스, 투피스, 선물용 애기옷, 숙소에 둘 포푸리 방향제 세트, 에그타르트, 코코넛파이 기타 등등


오늘의 전리품을 모아놓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10만원어치도 안되는 소소한 쇼핑이지만, 사실 쇼핑에서 중요한 것은 기분이다. 이걸 사서 내가 얻은 기쁨이 더 크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치앙마이 선데이마켓은 사랑이다.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앙마이는 매일 축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