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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만드는 시간

by 홍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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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만드는 시간


언젠가 저녁엔 아버지가 홀로 영화관에 가셨다. 발걸음이 점점 작아져서, 들고 있던 책을 놓아버렸다. 그 책이, 내 앞에 식물과 그림자가 되어, 완전한 오후가 되었다.


영화관에 앉아 있는데, 내가 모르는 삶이 착착착, 돌아가고 있었어. 놀라서 일어서려는데, 우르르 떨어져버린 모과나무의 열매가 발등을 찍었어. 가려고 가는데, 돌아가려고 일어섰는데.


아버지는 슬픔 같은 것이 향에서 퍼진다는 것을 믿고 계셨다. 그때의 일에는 슬픔을 뺀 나머지의 것들인데. 10월의 맑은 오후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던, 저녁이 고요해지는 계절이다.


(2017, 경북 안동)




박산하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호흡이 짧고 간격이 넓은 글을 쓰고 싶어 시 비슷한 걸 씁니다. 언어를 고르고 마음을 조율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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