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는 법
오아후 숙소에서 뭐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며 웹 서핑에 한창이었다. 인터넷 속 많은 자료,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러던 중 현지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색다른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라며 시간 약속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물고 있던 숙소로 픽업을 왔다. 지인은 혼자가 아니라 처음 보는 또 다른 일행과 함께였다.
일행들과 차에서 인사를 나눴지만, 차 안의 ‘어색함’이란 공기는 숨길 수 없었다. 와이키키에서 40여 분 정도 달린 차는 쿠알로아 리저널 파크(Kualoa Regional Park)에 도착했다.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터라 낯설진 않아 긴장감을 놓고 있었다. 공원에 들어선 차는 멈추지 않고 가장 안쪽에 있는 주차장까지 진입했다.
지인이 문을 열고 내리자 남은 사람들도 하나둘 따라 내렸다. 나만 빼고 이들 모두 일정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내린 나를 보며 지인은 웃으며 바다를 향해 손가락 짓 했다. ‘뭐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바다 가운데 있는 곳을 다시 가리키며 ‘오늘의 미션이야’라고 말하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눈 비비며 지인이 가리킨 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뭣! 바다 한가운데 섬엘 간다고!!!’
바다 가운데는 모자 모양의 작은 섬이 있었다. 옛 중국인들이 주로 쓰는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모자섬(chinamans hat Island)이라 불린다. 정식 명칭은 모콜리이(Mokoli'i) 섬. 당시는 5월이었는데 그 시기 물도 얕고 바람도 잔잔해 하이킹이 가능한 때였다. 튼튼한 두 다리로 여기저기 기웃기웃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탓에 하와이에 있는 모든 트레킹 코스를 완주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은 있었지만, 바다를 걷는다는 건 계획에 없었다. 이곳을 알고 있는 누군가라면 ‘세상에 어떻게 저길 걸어서~’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출발 전 짐은 최소화했다. 가방이고 휴대전화고 필요 없다. 사실 가져가기 어렵다. 일단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니 지인이 카메라를 챙겼다. 카메라는 가지고 있는 모든 비닐을 동원해 몇 겹씩 포장했다. 바닷속 암초들 탓에 맨발로 걷는 건 위험하니 아쿠아 슈즈와 한 몸이 되어본다. 출발 때 무슨 촉이었는지 아쿠아 슈즈를 신었던 건 신의 한 수였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소년들은 행복해 보였다. ‘나의 바다 트레킹도 행복할꺼야!’ 다짐하며 마라톤 선수처럼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평평한 모래사장에서 출발했지만 몇 걸음 옮기지 않아 크고 작은 돌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반겼다. 레드카펫일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나 우둘투둘 돌바닥이라니! 한 걸음씩 소폭으로 발을 떼며 찰싹거리는 파도와 인사를 나눴다. 점점 더 물속으로 걸어들어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 윗부분만이 겨우 물 위로 나와 있을 정도였다. 크지 않은 키 탓에(내 키는 160cm남짓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도 했다. ‘중간 정도 갔는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뒤늦은 걱정이 물밀 듯 쏟아졌지만....... 할 수 있는 건 계속 앞을 향해 걷는 것밖에. 무모하다 욕할지 모르나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순간이 있으리라. ‘왜 하필 지금이 그 순간이어야 하는 걸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또 한편으로 ‘언제 이런 도전을 해보겠어?’라며 위안했다.
공원 모래사장에서 500~600m 앞에 있는 모콜리이 섬을 향하면서도 계속 주차장 쪽을 향해 뒤돌아봤다. 앞을 향해 나가기도 버거운데 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 경치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뒤를 한 번 돌아보며 얼마나 왔는지, 또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그 위치만 확인할 뿐이었다. 카약을 타고 섬으로 향하는 무리가 보였다. 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기도 잠시, 카약이 옆으로 지나가는 순간 크게 일렁이는 파도에 물 한 움큼 먹고 ‘물이 짜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카메라를 든 지인은 비닐봉지에 포장한 카메라 때문에 때아닌 벌서기 자세를 취해야 했다. 팔이 저리는지 팔 한 짝이라도 내리려 하면 다른 동행인들이 한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카메라, 카메라~”. 물속에서 걸으니 30분~40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점점 섬에 가까워지자 수면 위로 몸이 올라왔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진화하는 것 마냥 말이다. 몸도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일행 모두 바다에서 수면 위로 완전히 올라왔다.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아~우리 정말 대단해, 바다를 건너다니! 해냈어’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함께 했다는 동질감도 초면인 이들과 하나 되게 했다. 바다를 건너 섬에 도착해 느낀 행복함과 성취감이란. 뿌듯했다. 그리고 이 나지막한 언덕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득 차 있었다.
그땐 몰랐다.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 말이다. 바다 한가운데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작디작은 섬. 그 섬은 오롯이 태평양의 뜨거운 기운을 온몸으로 맞서며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열을 내뿜고 있었다. 섬은 경사가 심했다. 정상까지 10분이면 거뜬하리라 여겼지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 이글거리는 모래 지면은 용암 지대의 기운보다 훨씬 더한 열기였다. 경사가 심해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어 맨발로 오르기로 했다. 신고 간 신발은 섬 아래쪽 한 편에 가지런히 벗어 놓았다.
한 걸음 떼자마자 한탄의 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워~뜨거워!’ 진짜 뜨거웠다. 얼마나 뜨겁던지 발바닥에 화상을 입는 줄 알았다. 걸음을 재촉하면 뜨거운 기운도 조금 덜 할 것 같아 서둘러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순서대로 올라가다 풀 잎사귀 위에 살짝 발바닥을 올려두고 그 열기를 잠시라 잊어볼까 했지만, 잎사귀 사이사이로 전달되는 그 활화산 같은 뜨거움이란 견딜 수 없었다. 발을 요리조리 옮겨도 보고, 한쪽 발을 살짝 들어 나머지 다리 종아리에 대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올라가는 데 무리가 따를 것 같아 동행인 중 한 명이 “남자들은 셔츠를 벗자”라고 제안했다. 이미 바다를 건너오느라 그들의 셔츠는 수영복이 된 지 오래였다. 더위에 상반신 탈의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 했다. 남자 동행인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었다. 창피하고 낯부끄럽고 그런 감정 따윈 느낄 새도 없었다. 게다가 네 명 모두 오랜 하와이 생활에 상반신 탈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벗은 셔츠 네 벌은 곧장 모래 바닥 행이었다. 바닥에 깔고 한 명씩 그 셔츠를 발판 삼아 이동했다. 마지막에 깔린 셔츠는 가장 끝에 오르는 사람이 앞으로 전달해가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겼다. 셔츠를 양탄자 삼아 몇 번을 반복하니 어느 순간 ‘브라보’라는 외침이 들렸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 있던 외국인들이 인사를 건넸다.
더 올라갈 곳이 없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제야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낮은 섬이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투명했다. 그 투명한 바다를 따라 출발 지점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 수채화라도 그린 것 마냥 그러데이션 한 푸른빛의 바닷물과 웅장한 대자연 쿠알라 산맥이 마치 나를 품는 듯했다.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땀방울과 젖은 옷을 식혔다.
시선을 다시 바다 쪽으로 옮겼다. 눈앞으로 태평양이 끝없이 펼쳐졌다. 360도 조망이 가능한 곳이니 두 팔 한 아름 벌려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움직여 본다. 경사가 심한 탓에 발아래 절벽을 보곤 ‘아뿔싸!’ 싶기도 했다. 섬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산맥과 푸른 바다가 나를 에워싸고 있는 황홀함이란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한편으론 바다 한 가운데 ‘붕~’하고 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들 숨 고르기를 마쳤는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인증사진을 찍자고 했다. 이런 곳에서 기념사진은 필수라고! 두 팔 들고 벌서기를 하며 애지중지 가져온 카메라의 가치를 높여야지! 바다 건너고 산 오르느라 이미 꼴은 말이 아니지만,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두 번 다시 하진 않을 것이란 걸 눈치 챈지도 모른다) 각자 포즈를 취하는데 힘듦은 온대간데 찾을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 지면은 여전히 끓고 있었다. 이미 남자들의 셔츠는 황토색으로 자연 염색한 것 같았다. 한 번 더 양탄자 노릇을 하더라도 크게 더러워지는 건 아니었다. 더러워지더라도 집에 가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노릇. 오를 때와 같은 방법으로 내려왔다. 그러고 고이 모셔둔 신발을 신고 다시 바다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섬 입구에 카약을 타고 막 도착한 몇몇 이들이 ‘알로하’라고 손을 흔들며 미소를 건넸다. 그 미소에 ‘너희들 좀 대단한데’라고 말하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돌아오는 길, 비록 물속의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물에 둥둥 뜬 것처럼 가볍고 홀가분했다.
군대에 가보지 않았지만, 군필자들이 내무반에서 느끼는 동기사랑, 나라 사랑 같은 그 진한 전우애를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나 바다 트레킹에 나서 험한 꼴 다 본 우리는 여전히 안부를 전하며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첫 만남을 웃으며 회상한다.
* 본 연재에 사용된 사진은 마할로(blog.naver.com/sseoble)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박성혜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프리랜서 에디터.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를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