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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그리고 친구

할레이바를 닮은 로라 이모

by 홍아미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장소, 만나는 친구의 연령대와 국적은 다양하다.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군인 마커, 파머스 마켓에서 만난 할아버지 폴, 비치에서 만난 슈짱, 셔틀 버스를 운전해주던 캐서린, 쇼핑센터 직원이던 미코, 이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해주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 마냥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서로에 대한 탐색전을 펼치는 이야기 끝에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게 된다. 딱히 편하지도 않은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 않은 이 분위기조차 즐기게 되는 것,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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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나게 되는 외국인 친구만큼 현지에 사는 교민을 만날 기회도 종종 생긴다. 바다 트레킹에 나섰던 친구들 역시 교민이었다. 음식 장사를 하는 교민은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로라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간 여행에 한국 음식이 간절히 생각났을 때 찾은 곳이 이모가 운영하는 트럭이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손님이 꽤 많았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니 “어서 와”라며 맞이했다. 대개 손님이 오면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투로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할 법한데 이모의 인사는 오랫동안 본 사람 마냥 친근함이 담겨 있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는 순간에도 “고마워, 사랑혀”라고 배웅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사랑혀’라니!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땐 몰랐다. ‘사랑혀’ 이 세 글자에 담긴 이모의 마음을.



두 번째 이모를 만났을 때 현지에 사는 지인과 함께였다. 지인과 이모는 이미 잘 아는 관계였고, 지인이 나를 정식으로 소개했다. 이모는 더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포옹하며 인사하는 게 참 오랜만의 일이라 어색할 법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포옹을 하면 정서적 친밀감이 촉진되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나눈 포옹의 힘이 우리 관계를 확장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음식을 먹는 동안 엄마처럼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지인이 데려온 사람이라 더 챙겨주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인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모습에 여행지에서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연락처를 나누게 되었고, 이모는 다음번에 꼭 본인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라고 당부했다.


세 번째 이모를 만났을 때 시어머니와 함께였고, 네 번째는 엄마와 이모와 함께였다. 엄마와 이모에게 로라 이모를 소개했다. 핏줄을 나눈 이모와 여행지에서 만난 이모. 왠지 모를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 이후에도 이모는 트럭을 찾는 내게 집에 가자고 했지만, 번번이 시내 쪽 숙소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집은 와이키키에서 한 시간 거리인 노스쇼어 할레이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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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챙겼다. 휴대폰 텍스트를 통해 전해지는 문장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 이모가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일과나 특별한 일을 이야기할 때면 ‘얼마나 외로울까’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다 다시 여행을 가서 이모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혼자 걱정하고 염려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그런 기분이다. 어쩌면 날 향해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이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출장차 하와이에 갔을 땐 이모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 출장이었고, 일정 탓에 이모를 보러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시간 여유가 생겼다. 무작정 이모 트럭으로 향했다. ‘네가 여기 어쩐 일이야?’ 싶은 표정으로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모 첫 마디는 “밥은 먹었냐?”였다. 나는 ‘이모 나 왔으니깐 밥 줘’라는 얼굴로 이모를 바라봤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공기를 뚝딱 차려 주었다. 하나도 급할 것 없는데, 내가 배고플까 봐 서둘러 준비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그러다 며칠 뒤 정말 이모 집에 하루를 신세 져야 할 일이 생겼다. 조심스레 “하루를 묵을 수 있냐?”라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본인 방이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이웃섬에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라 이모 집에 도착한 건 밤 9시가 넘어서였다. 그 시간이면 이모는 다음 날을 위해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혹시 저녁을 거르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는지 음식까지 준비해두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견디며 내 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소파에 앉아 졸음을 억지로 참으며 날 보는 모습에 미안하고 감사해 속도를 내어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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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모는 내게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하고 물었다. 계획은 오아후 남동쪽에 있는 ‘카에나 포인트’를 트레킹하는 것이었다. 이모부가 장사를 맡아 주는 날이라며 덕분에 이모도 휴무란다. 마침 본인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며 함께 가자고 내게 손 내밀었다. 그렇게 느닷없이 우리는 동행자가 되었다. 카에나 포인트는 땡볕 아래 비포장 길을 왕복 네 시간가량 걸어야 하는 곳이라 물, 초콜릿, 바나나 같은 간식도 든든히 챙겼다. 근데 고민이 되었다. ‘이모랑 네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지?’ ‘이야기 소재가 금방 떨어지면 어떡하지?’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출발과 함께 이모는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 년에 많아야 두 번 보는 내게 자신의 인생살이와 속마음을 비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와이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등 인생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꺼내 풀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게 카에나 포인트 종착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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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동식물보호구역으로 천연기념물인 앨버트로스의 거대한 서식지가 있고 야생 바다표범인 하와이안 몽크실이 휴식을 취한다. 땅에 굴을 파서 둥지를 만들어 지내는 앨버트로스를 보는데 이모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뜨며 신기해했다. “얼른 사진 찍어봐~”하며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을 눈에 담느라 분주했다. 이모의 추억이 짙어질 수 있도록 풍경과 이모 모습을 마음에 꾹꾹 담아 셔터를 눌렀다. 종착지에 도착해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이었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고, 고요한 사방 속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는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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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이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긴 이야기 끝에 “쿠아아니아(Kua-Aina) 버거 먹어봤어?”라고 물었다. 쿠아아니아 버거는 하와이를 대표하는 국민대표 버거이다. 요깃거리를 챙겨갔지만, 끼니로 해결하기 턱없이 부족한 음식인지라 집에 도착했을 땐 배가 고플 만도 하다. 그곳 햄버거를 한번 먹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다는 이모. 햄버거 가게는 이모 집에서 300mm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얼마나 먼 거리라고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모와 짧은 소풍은 햄버거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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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후 마지막 여정을 위해 짐을 싸는데 이모는 내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눈길을 피했다. 짐을 차에 싣고 정비하는 동안에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빼꼼히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우리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빨리 가”

“알았어요. 나오지 마”

“내가 왜 나가. 안 나갈거야. 나 잘껴. 얼른가”

“알았어. 갈게 문 닫아요. 얼른”


로맨스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헤어지는 연인보다 더 애틋하게 서로에게 모진 말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모도 나도 입술 꽉 깨물고 눈물 참던 그때 기분은 서로 같았다는 걸.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순간, 나는 봤다. 창문 사이로 내게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이모 두 눈을.


얼마 전 이모의 SNS 프로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혜야 고맙구 사랑혀”라고. 나는 그제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사랑혀’라는 말에 담긴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 로라 이모는 그렇게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하와이가 내게 만들어 준 최고의 친구이다. 옛 하와이 모습을 간직한 빈티지 마을 할레이바는 도시 같은 와이키키와 달리 정겹고 포근하며 또 따스함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로라 이모는 꼭 할레이바를 닮았다.




박성혜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 여행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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