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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1. 프랑스식 크리스마스와 타르트 플람베

by 홍아미



IMG_1946.jpg?type=w740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쿠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이나 추석쯤 될까. 유럽에서는 당일 전후로 이어지는 긴 연휴도 연휴지만, 크리스마스 한 달 전쯤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기 시작한다. 길거리와 쇼윈도, 곳곳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장식되고,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맘이 들뜨기 마련이다. 그저 타국에 1년 정도 공부를 하러 온 것뿐인 나조차도 크리스마스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IMG_2050.jpg?type=w740 클레어네 마스코트이자 크리스마스 내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었던 티튜스



클레어(Claire; 현지 발음으론 클레흐)는 교환학생 시절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프랑스인 친구다. 친한 친구가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연이 닿게 된 클레어는 마음이 열려 있을 뿐 아니라 신기하게도 성향 자체가 나와 잘 맞았다. 학업, 취업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부터 여행, 사진, 요리 등의 취미까지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를 맞아 클레어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바로 크리스마스에 나를 포함한 친구 세 명을 자신 본가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클레어의 본가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전 세계에서 유명한 프랑스 북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라는 도시에 있었다. 그러니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엔 이만한 곳도 없는 데다 본가는 손님을 초대하기에 알맞게 방도 넉넉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해보자. 이 말인즉슨 내가 자취방도 아닌 본가에 한국말이 아직은 많이 서툰 외국인 친구 3명을 동시에 초대하는 일과 같다. 그것도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IMG_8232.jpg?type=w740 평화로운 클레어네 동네


그러나 클레어는 진심이었다. 한사코 정말 괜찮다며 설득 아닌 설득을 했고, 어느새 나와 친구들은 스트라스부르행 기차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스트라스부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후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마중 나오신 클레어 아버지의 차를 타고 클레어네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프랑스에 있지만, 차라리 독일에서 장을 보는 게 나을 만큼 독일과 가까운 접경 지역에 있었다. 나무로 지은 2층집은 쾌적하며 아늑했고, 클레어의 부모님과 동생은 우리를 살갑게 환대해주셨다.


IMG_1944.jpg?type=w740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오너먼트



그날부터 우리는 특별한 일상을 보냈다. 클레어 가족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무척 다채로웠다. 우선, 클레어는 직접 운전해 우리를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에 데려다주었다. 스트라스부르그의 중심에 있는 광장에 펼쳐진 마켓은 규모부터가 남달랐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따끈한 뱅쇼 한 잔을 마시며, 상점 한곳한곳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결국 기념품으로 커다란 진저브레드맨 쿠키를 샀다.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며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갖가지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한번 차를 타고 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스부르 외곽에서는 도심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 양쪽으로 소박한 가정집과 작은 동네 상점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얼마 후 우리 차는 그래도 규모가 제법 있는 오두막 앞에 멈춰섰다. 클레어 가족은 이곳이 바로 우리 삼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며. 알자스 지방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의외로 세련된 공간이 등장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클레어의 삼촌은 풍채부터 호탕한 분이었다. 상상 속의 오두막 주인을 눈앞에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그 편안한 인상과 순박한 웃음에 마음의 빗장이 금세 풀리고 말았다. 지하의 와인 저장고부터 레스토랑 곳곳을 둘러본 후 본격적인 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맛볼 메뉴는 타르트 플람베(Tarte Flambée). 쉽게 말하면 알자스식 화덕 피자였다. 과거 유럽 사람들이 빵을 화덕에 굽기 전에 온도를 측정하려고 넓게 펴 얇은 반죽을 미리 구운 데서 유래한 음식으로, 점차 토핑이 다양해지며 주식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IMG_1989.jpg?type=w740 화덕 앞에서 대기하는 삼촌



IMG_8277.jpg?type=w740 갓 나온 타르트 플람베


삼촌이 직접 화덕에서 꺼내 서빙까지 해주신 타르트 플람베는 일단 피자와는 모양새부터가 조금 달랐다. 피자가 일반적으로 둥글고 두꺼웠다면, 타르트 플람베는 네모나고 얇았다. 가장자리는 거의 탄 것처럼 화덕에서 바싹 구워졌고, 그 안은 새하얀 치즈와 베이컨, 양파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와삭’ 소리와 함께 녹진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짭조름한 베이컨과 아삭한 양파는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맛에 포인트가 되었다. 창피한 것도 모르고 폭풍 흡입하다 보니 그 큰 타르트 플람베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올려다 본 삼촌의 얼굴에는 흐뭇한 표정이 만개해 있었다.


IMG_1993.jpg?type=w740 댄스 댄스 댄스!


그 후 알자스식 저녁 식사는 조촐한 댄스파티로 마무리되었다. 어두운 공간에서 컨트리 음악에 맞춰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러다 지치면 목도 축였다가 시시껄렁한 대화도 했다. 헤어질 때가 되자 처음의 어색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아쉬운 마음만 가득했다. 어릴 때부터 산타는 없다고 믿었던 내게 기적처럼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양슬아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반대로 맛없는 걸 먹을 때 유난히 화가 난다. 궁극적으로 매끼니 주변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든 정성스런 요리를 먹는 호사스런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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