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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Jan 10. 2018

첫 해외 출장의 기억

아프리카의 낯선 휴양지, 세이셸에 가다

“다음 출장지는 세이셸이에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잡지에서 봤던 한 장의 사진을 떠올렸다. 청량한 민트색 해변에 거대하고 매끈한 바위들과 키 큰 야자수가 함께 놓여 있는,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해변의 풍경. 인도양에 있는 아프리카 휴양지라는 것 외에는 세이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 사진조차 보지 않은 다른 팀원들은 ‘세이셸은 도대체 어디야?’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컷을 찍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 감독님을 앞에 두고 속으로 아싸!!! 여러 번 외쳤다. 출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본 적 없는 낯선 섬에 가는 거니까. 그것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블로그 후기가 한 페이지를 채 넘지 않는 휴양지에 말이다.



c세이셸관광청





가긴 힘들지만 가면 너무 좋은 휴양지

순수 비행시간만 14시간. 아프리카 대륙에 붙어 있는 섬이라, 아부다비까지 10시간, 아부다비에서 또 4시간을 가야 했다. 휴양지라기엔 너무한 비행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세이셸 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관광청 직원을 보고서야 아프리카 대륙에 온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기대하고 세이셸을 갔다간 당황할 것이다. 흔히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광활한 초원과 사파리, 혹은 가난과 질병- 과 세이셸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이셸은 부자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초록창에 세이셸을 치면 연예인 나르샤의 신혼여행지, 윌리엄 왕세자비와 오바마의 휴양지라는 정보가 가장 많이 뜬다. 4박 5일 동안 세이셸이 유난히 부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태초의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도 있을 테고.

c세이셸관광청





세이셸에 대한 첫인상 : 부유함

세이셸 물가를 생각하면 부자들’만’ 갈 수 있는 휴양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래 휴양지는 물가가 비싼 편이기도 하지만, 세이셸은 어마어마했다. 한 끼 식사가 최소 만원대,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는 데다 관광지로 이동 할라 치면 한화로 4~5만 원 정도, 제일 저렴한 리조트가 1박에 20만 원대였다. 반나절 낚시 투어를 알아봤는데, 아주 상냥한 말투로 제일 저렴한 프라이빗 보트는 1000달러라는 내용의 답장을 받고 스케일이 남다른 휴양지라는 생각을 했다. 

으레 관광객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고 현지인 물가는 따로 있기 마련인데, 세이셸은 관광객과 현지인이랄 것 없이 그냥 물가가 비싼 나라였다. 세이셸에서 자고 나란 토박이인 호텔 직원 역시 물가 얘기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물가만큼 임금도 높은 편이라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c양주연





그래서인지 세이셸 하면 부유함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깨끗한 길거리, 등교하는 아이들의 말끔하게 다려진 교복, 세이셸에서 만났던 모든 세이셸 사람들- 관광청 직원, 식당 주인, 택시 드라이버-에겐 세련된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 친절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고 자란 이들 특유의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이셸 사람들, 세이셸루아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노예무역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지만 지금은 고유한 크레올 문화를 지닌, 아프리카에서 국민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전 국민 무상의료, 15세까지 무상 교육 등 복지 수준도 높다. 세이셸의 주 산업은 관광업인데, 후손에게 이 자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국토의 50%를 보호구역으로 설정해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얼마나 자연 보전에 신경을 썼으면, 마헤섬에 사는 인구보다 거북이 수가 월등히 많다고 한다.(진짜로!) 알면 알수록 새로운 ‘아프리카’의 면모였다.


c양주연





세이셸 여행 추천 코스

세이셸을 둘러보기에 4박 5일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세이셸은 수도가 있는 마헤 섬과 수많은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세이셸의 진가는 각기 다른 매력의 작은 섬들에 있는데, 섬들이 하도 멀리 떨어져 있어 경비행기로 2~3시간은 가야 했다. 그러니 본섬인 마헤 섬을 둘러보는데 하루, 주요 부속섬인 프랄린과 라디그 섬 둘러보는데 하루, 리조트에서 하루를 보내면 일정이 모두 끝난 셈이었다.

국제공항이 있는 본섬 마헤섬은 도시적인 느낌이 강했다. 수도인 빅토리아 시티는 교통량도 많고 큰 시장도 있으며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또 유명 고급 리조트들이 대부분 마헤 섬에 있어서, 세이셸에 오는 사람이라면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c양주연




짧은 일정에 섬까지 둘러보겠다면 꼭 봐야 할 곳은 프랄린과 라디그 섬이다. 프랄린은 세이셸을 대표하는 ‘코코 드 메르’ 열매로 유명한 곳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 둘다를 닮은 코코 드 메르 열매는 발레 드 메 나무라는 야자나무에서 열리는데, 이 나무는 오직 세이셸에서만 볼 수 있고 1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원시림이라고 한다. 이 나무에 선사 시대부터 인류의 역사가 모두 새겨져 있는 셈이다. 프랄린 섬에는 발레 드 메 나무 군락이 있는 국립공원이 있어, 거대하고 나이 든 나무들 사이를 트레킹 할 수 있다.


c양주연




라디그 섬은 자전거로 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사진으로 보고 반했던 세이셸을 대표하는 해변 ‘앙수스다정’도 라디그 섬에 있고 인도네시아 길리 섬처럼 황소 마차나 자전거만 운행이 가능한 곳이다. 유니온 에스테이트 농장에선 코코넛과 거북이들을 볼 수 있다. 처음엔 등딱지가 커다란 거북이 개나 고양이마냥 사람이 주는 풀과 과일 껍질 등을 먹는 것이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거북이를 볼 수 있어서 사진도 찍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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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인생의 봄날이야

얼마 전 신년운세가 궁금해 난생처음으로 신점을 보러 갔다. 무당 아줌마는 나더러 대뜸 “지금이 인생의 봄날이야”라고 했다. 기분이 좋아져 하하 웃고 말았지만 한 달 전 세이셸 바다 위에서 했던 생각을 어떻게 알고 있지, 역시 귀신은 귀신인가 봐 속으로 생각했다.

세이셸에선 매 순간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낚시 투어를 하러 갔을 때였다. 세이셸 바다 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 주말마다 이렇게 배를 타고 있으면 좋겠다고.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구체적인 계획 따위 하나도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꿈꾸는 삶일 뿐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현재까지는 두루뭉술하게 꿈꿨던 것과 대강 비슷한 모양으로 살고 있다. 예를 들자면 PD를 꿈꾸었는데 모바일 영상 제작자가 되었다든가. 꿈을 이루었다기엔 매우 어설프지만 또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c양주연




3개월 전의 내가 상상이나 했을까. 목요일 아침, 세이셸의 바다 위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줄. 정말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매주 사무실에서 20대 관련 아이템을 짜내던 내가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출장을 다니며 여행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를 감각할 때마다 나의 선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좋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막막하고, 1년 후가 가늠이 되지 않아 불안하기도 하다. 

세이셸 바다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미래라면 지금처럼만 살기를 바라자고. 정말로 1년 후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더 이상 지금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10년 후에 취미 삼아 이렇게 바다 위에 있고 싶다고 꿈꿔본다. 인생은 모를 일이니 10년 후 세계의 어느 바다 위에서 또다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의 세이셸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게 됐다고.


c양주연






글쓴이 - 양주연

뭍보다 물이 편한 바다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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