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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Feb 08. 2018

소울메이트와 함께 여행할 용기

나의 러시안 소울메이트, 안나와의 발리 여행


안나는 나의 첫 외국인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안나는 러시아 시베리아에, 나는 한국 서울에 살고 있다. 안나와 나는 6년 전 프랑스에서 처음 만났다. 헤어지던 날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그때의 우리는 전혀 몰랐다. 우리가 6년째 매년 만나고 있을 줄은. 




1. 첫눈에 반하다
우리는 2012년 프랑스 워크캠프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안나를 만난 첫눈에 알 수 있었다. ‘또라이구나’. 우리는 꽤 잘 통할 거란 예감과 함께. 그녀는 보라색 꽃을 머리에 꽂고 빨간 반바지를 입고선 저녁식사 자리에 나타났다. 히치하이킹으로 그곳까지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입을 열 때마다 놀라운 얘기가 쏟아져 나왔고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됐다.
열정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중간중간 그녀의 얼굴엔 시니컬하고 쓸쓸한 표정이 스쳤다. 그럴 땐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또다시 알 수 있었다. 안나는 주목받는 것에 익숙지 않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란 걸. 
나의 직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곧 친해졌다. 우리가 신청한 워크캠프는 프랑스 낭뜨 지역의 음악 페스티벌을 서포트하는 일이었는데,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안나는 자기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다고 털어놨다. 사람을 쉽게 좋아하고 또 그만큼 쉽게 상처받는 모습이 나와 닮아 있었다. 성향이 비슷했던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언어와 자라온 환경이 다름에도 이렇게 말이 잘 통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그다음 해 프랑스에서였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면서 프랑스 음악 페스티벌을 함께 찾아갔다. 2주간 같은 텐트에서 생활하며 가족, 과거 친구 관계 등 서로의 더 깊은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2. ‘함께 여행’에 대한 걱정

다음 해인 2014년, 안나는 인도네시아에서 6개월간 영어 교사 인턴십을 하게 됐다. 안나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 소식을 알리며 함께 발리를 여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도 아니고, 인도네시아에서 안나를 만날 수 있다니! 당시 시간 많은 취준생이었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네시아 발리를 2주간 여행하게 됐다.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이 됐다. 자원봉사를 할 때와 달리, 함께 여행은 14일 내내 꼭 붙어다님을 의미한다. 자연히 나의 단점도, 그녀의 단점도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나에겐 ‘싸우면 친구를 잃는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와 한번 다투고 나면 관계가 틀어져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싸움 그 이후의 관계를 상상해본 적도 없었고 불만이 있어도 참거나 모르는 척하는 식으로 갈등을 피했다. 싸우며 맞춰나간다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3. 아니나 다를까 불만이 쌓였다
같이 생활한 날을 세어만 봐도 30일은 넘을 텐데, 함께 여행을 하니 안나를 완전히 새로이 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여행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여행에 있어 상당히 게으른 편인 나는 유명 관광지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데, 안나는 목표한 건 무조건 봐야 하는 여행 스타일이었다. 
또, 돈 쓰는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숙박과 식사를 아껴 여행지 한 곳이라도 더 가보고 체험하는데 투자했다. 평소 여행을 할 땐 가능하다면 카우치서핑이나 텐트에서 자고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반대로 나는 여행에선 편한데서 자고 맛있는걸 먹자주의였다. 돈은 한국 가서 어떻게든 벌면 되니까 여행에서는 돈보다 내 컨디션이 중요했다. 
안나를 따라 저녁을 건너뛴 둘째 날 밤, 새벽에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이 깼다. 편의점이라도 갈까 했는데 혼자 발리의 골목길을 걷기가 무서워서 꼴딱 밤을 새웠다. 도미토리 이 층 침대에서 뜬눈으로 아침이 오길 기다리면서 함께 여행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 생각을 했다. 안나 역시 나의 여행 방식이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울 텐데(실제로 나중에 그랬다고 고백했다). 대놓고 말하기엔 애매한 아주 사소한 불만들이 먼지처럼 쌓이고 있었다.





4. 일은 냥냥 비치에서 터졌다
꾸따 비치에서 우붓으로 이동하기로 한 날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우붓으로 떠나고 싶은데 안나는 조식을 먹으며 한가롭게 다른 여행자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조이! 우리 냥냥 비치 가자! 진짜 멋있대!!!”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스쿠터로 3시간 거리인데 꼭꼭 숨겨진 해변이라 구글에도 정확한 위치는 나오지 않고 그 근처로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단다. 

 1차 빡침. 아무리 봐도 지금 냥냥 비치로 출발했다가는 오후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오늘 우붓에 숙소를 예약해뒀고 버스를 못 타면 훨씬 비싼 요금으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안나는 음, 하고 수긍하는가 싶더니 “조이~ 나 거기 꼭 가고 싶어~” 라며 애교를 피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버스를 타겠다는 약속과 함께. 졌다. 그래 가자. 책임은 안나 네가 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식 먹던 포크를 내려놓고 냥냥 비치로 향했다.






히든 비치라더니, 냥냥 비치로 가는 길은 정말로 보물 찾기였다. 구글 맵에 나오는 냥냥 비치로 스쿠터를 내리 달려 찾아갔더니 관광객이 다글다글한 전망대만 나오고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발리 현지인들도 제각기 알려주는 길이 달라서 땡볕에 같은 도로를 몇 번이고 뱅글뱅글 돌아야 했다. 결국 네 번째 시도만에 수풀이 우거진 산길에서 ‘냥냥 비치’라는 아주 작은 표지판 하나를 찾아냈다. 이미 시간은 우붓으로 가는 버스 출발 한 시간 전이었다. 해변을 찾아내고 신이 난 안나 앞에서 나는 도저히 웃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해변으로 뛰어내려 가는 안나를 불러 세워 그간 쌓인 말을 쏟아 냈다. 왜 이렇게 멋대로냐고, 네가 마음대로 결정하고 고집부려서 솔직히 너한테 화가 많이 나 있다고 정색하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이제껏 친구에게, 아니 가족이나 남자 친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 나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나도 혼자 삭이는 쪽이 더 편했다. 화를 내고 난 이후에 관계를 수습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신기하게도, 안나에게 화를 내는 동시에 마음이 풀렸다. 더욱 놀랐던 건 안나는 내가 이제까지 기분이 나쁜 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렇게 온몸으로 티를 냈는데? 그러면서 표현을 하지 그랬냐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민망함과 함께 오히려 미안함마저 몰려왔다. 다음부턴 조심해달라고 얘기하고선 아무렇지 않게 해변으로 향했지만 심장이 여전히 두근거렸다.





냥냥 비치는 고생해서 찾아온 만큼 예뻤다. 우리 둘 그리고 인도네시아 현지인 두 명까지 딱 네 명만이 너른 해수욕장에 있었다. 발에 닿는 모래는 진흙처럼 부드러웠고 에메랄드빛 파도는 거칠지만 아름다웠다. 정돈되지 않은, 야성적인 느낌을 지닌 해변이었다. 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다. 숨겨진 보물섬을 찾아낸 의기양양한 해적이 되어 우리는 신나게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달리고 드러누웠다. 그 순간만큼은 하얀 백사장이 우리의 아지트였고 둘만의 천국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안나가 물어왔다.

“조이, 버스는 어떻게 하지?”
“내버려둬. 택시 타지 뭐. 원래 그럴 거였잖아?”





5. 지나고 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3년 전에 다녀온 발리를 떠올리면 냥냥 비치와 스쿠터로 달리다가 만났던 계단식 논, 로컬 백반집만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 안나가 데려간 곳이었다. 냥냥 비치를 다녀온 이후 나는 웬만하면 안나의 주장을 따랐다. 그녀를 믿었기에 냥냥 비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또한 냥냥 비치에서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 덕에 그 이후의 여행이 편해졌다.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표현을 했고 안나 역시 내 얘기를 들어주려 하고 무리하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이 여행이 끝나고 알게 됐다. 싸우는 게 별 것 아니구나. 맞춰가면 되는 일이었구나. 발리 여행을 하고 난 그다음 해 안나는 태국에서 영어 교사 자리를 구했고 계약 기간이 끝나자 한국으로 와 한 달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고 부산, 제주도도 함께 다녀왔다. 처음이 어렵고 두 번째, 세 번째는 점점 더 쉽다. 쉬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재밌어진다. 이제는 서로가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일이 있으면 어렵고 겁이 난다. 그럼에도 발리에서 내내 곱씹었던 이 문장에 기대어 매번 용기를 낸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글쓴이- 양주연

뭍보다 물이 편한 바다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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