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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Mar 02. 2018

우아한 브런치 즐기기

일상을 빛나게 하는 순간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우리는 일상을 탈출하듯 어딘가로 떠난다. 처음 하와이 여행에 나설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런 것 같다. 무얼 특별히 해야겠다는 욕구도 의욕도 없었다. 그렇게 첫 여행을 마친 후 하와이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뭘 해보겠다거나, 어딜 가보겠다 하는 등의 소소한 버킷 리스트가 늘어났다.


하와이에서 누구나 한 번은 느긋한 쉼을 꿈꿀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짧은 여행 시간에 얽매이다 보면 그 느긋한 쉼이 오히려 사치가 되어 버린다. 비치에서 느긋하게 하루를 보낸다거나, 카페에서 종일 넋 놓는다거나 하는 등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알람 없이도 이른 아침 눈이 떠졌고, 산책을 빙자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출근길에 나서는 직장인, 엄마 손 잡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는 학생들, 차창 밖으로 낯선 여행지를 구경하기 바쁜 관광버스 속 인파, 반쯤 잠에서 덜 깬 채 액티비티에 나서는 관광객을 픽업하는 차량이 고속도로에 진입하고자 줄 서 있다.


투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관광객을 보고 나니 운동을 하는 내내 ‘나는 오늘 뭐 하지?’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혼자서 우아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우아하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를 뜻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시간에 쫓기기보다,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게 내 ‘우아하게’의 정의였다. 다만 전제 조건은 바다가 아닌 곳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땀 기운 씻어내고 가져온 옷 중 가장 블링블링 한 꽃무늬 원피스를 장착하고, 머리도 평상시와 달리 한 가닥을 땋았다. 역시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는 건 진리였다. 거울 속 낯선 이미지의 내가 어색했지만, 이왕 우아한 하루를 보내기로 했으니 그냥 놔둔다. 아침은 지났고, 점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른바 브런치 타임.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건 호놀룰루 뮤지엄 스팔딩 하우스(Honolulu Museum of Art Spalding House)이다. 호놀룰루 뮤지엄이 본관이라면 별관 정도 되는 이곳은 내가 하와이에서 알고 있는 곳 중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숙소에서 10분가량 차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마키키(Makiki)’라는 곳이 나온다. 대중교통으로도 방문하기 어려운 위치라 로컬들도 차가 있어야만 방문이 가능한 곳이다. 넓지는 않지만, 전시 공간과 카페 그리고 정원을 가진 이곳에 발을 디디면 시간은 거북이걸음보다 늦게 지나간다. 참 희한한 노릇이다. 환경이 인간을 이토록 지배한다는 것이 말이다.



미술관에 왔지만, 카페를 먼저 가니 아직 영업 전이라 다시 전시실로 향했다. 야외 작품 여기저기 기웃하며 사진을 찍다가 내부 전시실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 혼자다. 나 혼자 미술관을 전세 낸 것처럼 작품을 다 가진 기분이다. 조선 시대 병풍과 한국 작가의 작품에 흐뭇해진다. 옷도 잘 차려입었겠다 동선을 따라가며 사진도 여러 장 찍어본다. 혼자 예술에 심취한 마냥 구도도 이리저리 잡고, 남들이 보면 혼자 쇼하는지 알 테다. 그렇게 전시 공간을 돌아 나오면 진짜 비밀의 정원과 마주하게 된다. 다른 사람 몰래 나 혼자 사랑에 빠진 마냥 이 공간이 내게 주는 감정은 그렇게 특별하다. 넓지 않은 정원이지만 곳곳에 조각품도 전시되었고, 나무 그늘도 많다. 잔디도 얼마나 풍성한지 맨발로 거닐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다. 단 벌레가 있어 가끔 물리곤 하는데, 그나마도 이겨낼 수 있는 아늑함이다.



다시 카페로 향한다. 짝지어 앉아 있는 몇몇 손님 사이 나 홀로 우두커니 걸어가니 직원이 “혼자냐?”고 재차 물어본다. 속으로 ‘혼밥족 처음 보나?’ 싶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메뉴 중 혼자 먹을 수 있는 브런치 메뉴와 에이드를 시켰다. 학부모 모임이라도 하는 듯 뛰어노는 아이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일본인과 미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모임을 하는 중이었다.


제법 신선한 샐러드와 팬케익이 먹음직스러웠다. 에이드는 탄산수만큼 상큼했다. 혼자 사치를 부리다 보니 주위의 기분 좋은 재잘거림이 귀에 들어왔다. 내 테이블 뒤로 노부부가 앉았다. 노부부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Thank you”하는 것 아닌가. 흘끗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들어 꾹꾹 음식만 삼켰다.



누군가와 이 순간을 즐겨도 좋겠지만, 홀로 보내는 시간이 적적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도, 멋진 공간도, 비밀의 장소도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이 호사가 좋았다. 몇몇 손님이 카페에 들어오고  또 떠나는 동안에도 나는 자리를 지켰다. 에이드를 다 마신 후 아메리카노까지 주문했다. 카페 옆 아트숍 시계는 이미 오후로 들어섰다. 햇살은 더 따사로워졌고 공기는 더 차분해졌다. 커피는 들고 나와 다시 정원으로 향했다. 좀 전 카페에서 주문하던 한 커플이 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 속 풍경을 그려 내고 있었다.


언덕진 곳 몽키팟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에 잠시 앉았다. 책을 펼치지도, 음악을 듣지도 않은 채 조용히 시선을 따라 즐겼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눈앞에 걷고 있는 색이 예쁜 모히칸 스타일의 새 한 마리를 보게 된다. 숨죽여 보다 ‘안녕’하고 인사도 건네 본다. 그러다 앞에 앉은 커플을 힐끗 쳐다봤다. 시작하는 연인의 수줍음과 설렘이 사랑으로 샘솟는 듯하다. 시럽 한 방울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이 달곰하게 넘어간다.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부지런함을 떨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메뉴가 그리 거창하지도, 장소가 화려하지도 않았다. 단순한 식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겐 그 이상의 시간이다.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한 접시의 음식과 차 그리고 커피뿐이었지만, 자고로 나를 에워싼 여유로움과 포근함은 내 여행 중의 일상을 빛나게 하는 순간이었다.





글, 사진- 박성혜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 여행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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