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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Mar 16. 2018

익숙함 속에서 찾는 특별함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



반은 일의 연장선이고 나머지 반은 휴가인 9번째 하와이 즐기기가 시작되었다. 기대감보다는 익숙함이 먼저이고, 그 익숙함 속에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된 하와이행 비행. 한껏 부푼 설렘보다는 마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가는 사람 마냥 편안함이 더 크다.


오아후를 거쳐 빅 아일랜드 코나에 도착해 첫 숙소로 오는 길, 공항에서 숙소까지 20여 분을 GPS에 의존하지 않을 채 왔다. 섬 도로가 단조로운 탓도 있지만, 익숙함이 만든 결과였다. 이전부터 눈여겨본 콘도에 운 좋게 방 하나가 남았다. 체크인 이틀 전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극적으로 내게 온 이 숙소를 서둘러 예약했고, 도착 후 체크인을 했다. 혼자 사용하기 아까울 만큼 근사하고 또 내 집처럼 편안함이 감돌았다.


익숙한 루트 속에 특별한 것은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인천에서 출발 때부터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출발하던 날 일산에서 시작된 비는 인천공항에 가까워질수록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보딩 타임이 10분, 20분씩 지연되더니 결국 50분이나 지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 후에도 활주로를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두 시간이나 지연된 상황. 오아후에 도착해 빅 아일랜드로 가는 주내선을 세 시간 후로 여유 있게 예약했지만, 이미 출발부터 두 시간이 늦었다. 내리기 직전 승무원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기장의 승낙으로 나는 가장 빨리 내릴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기내 스위트 홈과도 같은 일등석에서 10분 정도 탑승했지만, 마음은 좌불안석이었다. 호놀룰루 공항에 11시 12분에 도착했고 1등으로 내린 나는 빛의 속도로 입국장까지 달렸다. 아무도 없는 공항을 1등으로 달려 나오는 기분은 색달랐다. 다만 그걸 만끽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빅 아일랜드 코나행 비행편(빅 아일랜드에는 코나와 힐로 두 개의 공항이 있다)의 보딩 타임은 12시 10분. 다행히 입국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 20여 분 만에 심사까지 마쳤다. 수하물을 찾고, 기내와 면세점에서 산 액체류 제품은 수하물에 넣은 후 재위탁해야 한다. 자동 연계가 안된다. 현지 공항 직원이 이웃 섬 가는 수하물을 일일이 찾아 분류하고 있었다. 본인들이 생각해도 촉박한 시간 탓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저희가 처리해드리니 어서 주내선 터미널로 가세요!” 아. 얼마나 고마운 상황인가. 시간을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하물이 제대로 부쳐질까?’ 하는 의심은 거둘 수 없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은 약속이나 한 것 마냥 찾아왔다.



나름 국제공항이지만, 수동 시스템의 수하물 벨트는 ‘찌우~익, 끼~익’하는 소리를 냈다. 노후화되어 녹슬었다기보다 ‘삐~이’하는 알림 신호음처럼 들려지는 소리. 내게는 그 소리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코나 공항 수하물 벨트 위에 내 것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30분만 기다리면 다음 비행기로 올 거야”라는 항공사 직원의 말이 무색하게 내 짐은 저녁 비행기로 왔고 나는 밤 9시가 넘어서야 짐을 가져온 항공사 직원의 초인종 소리로 여행의 문을 열었다.


오아후로 오는 기내에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8시간 비행과 19시간의 시차로 피곤할 법 한데 침대에 누운 내 눈은 쉬이 감길 줄 몰랐다. 수면 안대의 도움을 빌려봤지만, 말똥말똥한 눈은 나를 괴롭혔고, 어렵사리 눈을 붙였지만 세 시간 만에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비치 앞이 숙소인 탓에 파도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파도도 단잠을 자는지 귀에 스칠까 말까 하는 소리였다. 해가 뜬 후 모닝 스노클링을 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숙소는 코나 지역 셀프 스노클링의 성지인 카할루우 비치 앞에 있다. 3분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물놀이를 하고 나서도 몸은 피곤하지 않았고 결국 하루를 보낸 후 밤 9시가 돼서야 밀린 잠이 쏟아졌다.

시차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숙면을 취했다. 아침 6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알람 대신 무리 지어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몸은 개운했다. 물 한잔 삼키고 라나이(베란다)로 나서니 새소리를 잠재우는 아이들의 웅성임이 들렸다. 엉클어진 머리로 의자에 앉았다. 이제 막 통튼 시간, 날씨가 그리 화창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기운찬 소리는 햇빛 뜬 날씨 마냥 쨍했다. 삼삼오오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아이들은 시선을 뺏기 충분했고, 여행지의 익숙한 풍경이 아닌 일상 속 흔한 풍경에 온 시선을 빼앗겼다. 형제가 나란히, 아빠 손을 꼭 잡고, 잠이 반쯤 덜 깬 채 뚜벅 걸음으로, 늦잠을 잤는지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지극히도 평범한데 시선을 놓을 수가 없었다.






7시가 되니 어김없이 노란 스쿨버스가 정류장 앞에 등장했다. 순서대로 아이들을 태운 스쿨버스가 비치 앞 정류장을 지나니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고 새들의 지저귐은 커졌다. 여행지의 흔하고 흔한 풍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이 내게 특별하게 와 닿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이 자리는 여행자들이 채울 것이다. 비슷비슷한 관광지의 풍경 속에서 로컬들의 일상을 마주하며 시작한 하루는 이색적이진 않았지만 특별했고, 익숙할법한 일상의 풍경이지만 행복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코나의 일상 속으로 나는 걸어 들어갔다.






글, 사진 | 박성혜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 여행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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