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가 Mar 31. 2018

여행에도 한정판이 있다 1

여행은 타이밍, 라바(Lava)를 찾아서

“사람이 죽었다니까!”

뭐! 사람이 왜 죽어? 차라리 가이드가 사고당한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 한쪽이 허하다. 풀 한 포기 잡초 하나라도 세상에 귀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얼굴도 모르는 이의 죽음이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라바(Lava) 투어 중 가이드가 사고를 당했다.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라바를 다시 보겠다고 결심한 내게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가이드의 죽음은 인터넷 지역 신문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Noxious Steam Cloud Claims Life Of Lava Enthusiast> 사건인즉슨, 일몰 때 라바를 찾아 나선 가이드와 고객이 투어 중 비구름을 만났고, 라바가 흐르며 발생하는 가스와 함께 수증기에 갇히게 되었다. 망치로 머리를 ‘퍽’하고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건 가이드의 직업 정신이었다. 션 킹(Sean King)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세 명의 고객 안전을 먼저 확보한 후 연기 속에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라바 하이킹과 사진 촬영에 오랜 시간 투자한 그의 SNS에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자연 앞에 환호하던 인간이 한순간 그 자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라바 하이킹에 대한 경고로 이어졌다.



사건 이후 몇몇 이들은 조심스레 라바 투어가 금지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누군가 생의 문턱을 넘은 순간이지만 그 죽음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막지는 못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음 뒤 남은 자들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마냥 생계를 이어갔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 칼라파나 앞 렌탈샵은 온갖 종류의 서비스로 투어에 나선 이들을 유혹한다.



라바를 보기 위해 흐르는 양과 방향이 아닌 비 · 바람 · 연기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칼라파나가 위치한 볼케이노 지역의 기상 예보를 확인하니 일주일 내내 비비비. 코나에 숙소를 잡았던 터라 운전만 세 시간 가량해야 하는 상황.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 ‘갔는데 비가 오면 드라이브했단 셈 치지 뭐.’하고 생각하며 새벽녘 차에 올랐다. 차창 밖 익숙한 풍경이 얼마나 왔고, 또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시간을 짐작게 했다. 차량 와이퍼는 째깍째깍 시계추 마냥 왔다 갔다, 켰다 껐다를 반복했고 날씨에 따른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꼬박 세 시간을 달려 마주한 칼라파나는 ‘무슨 일 있었어?’라는 모습으로 민낯을 드러냈다.



2016년 여름. 땅이 진화 중이라는 생경한 순간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했을 그 무렵, 라바는 바다를 향해 멈추지 않은 기관차처럼 철철 흘러내렸다. 세상에 빨간색 폭포가 있다면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엄마는 사위 뒤에 몸을 실었고, 자전거와 걷기를 반복하며 라바와 대면했다. 환갑을 막 넘긴 엄마의 눈에도 살면서 본모습 중 가장 신기하다는 광경 앞에 우리 입은 다물어질지 몰랐다. 한참을 실오라기 같은 바리케이드 앞에 앉아 200m 너머의 그 속수무책인 자연에 넋을 놓았다. 신의 영역일 법한 대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절로 터지는 환호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2018년 봄. 상황은 그때와 달랐다. ‘그때 라바를 너무 쉽게 봤어’라고 혼자 생각할 만큼 라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누군가 죽음에 대한 애도인 듯싶다가도 이내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나를 어서 데려가 주세요’하고 말하는 듯 줄지어 선 자전거 중 기아도 안장도 탄탄해 보이는 것으로 한 대 골랐다. 십 분이라도 시간을 단축해보겠다고(솔직히 고백하면 편하게 가고 싶었다) 자전거 렌탈에 셔틀 서비스를 더 했다. 몇 년 사이 이곳은 ‘라바의 성지’임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많은 이의 발걸음을 유혹했다. 자전거도 서비스 종류도 진화한 걸 보면 말이다.



파호아(Pahoa) 마을을 지나 칼라파나로 이어지는 130번 도로 끝은 용암으로 뒤덮였다. 1990년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흘러내린 라바는 칼라파나를 앗아갔다. 평탄한 아스팔트 도로는 라바가 뒤덮었고 옹기종기 모인 집 기둥은 시뻘건 불기둥에 녹아내렸다. 주민들은 한순간 터전을 잃었다. 그렇게 죽은 듯 죽지 않은 칼라파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예고라도 하는 듯 누군가는 새 삶을 꾸려나간다. 자전거를 실은 셔틀은 삶의 현장을 마주하며 두 개의 화산국립공원(Volcanoes National Park) 게이트를 통과했다. 셔틀로 십 여분 달려 2 게이트, 여기서 다시 자전거로 십 여분을 달려 3 게이트에 다다랐다. 자갈길을 두 시간 걸어야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꽤 편리했다. 3 게이트에서 멈춰야 하는 페달은 멈출 줄 몰랐고 막다른 길 끝에 도착했다. 그곳엔 마치 비밀의 빗장 같은 바리케이드가 하나 더 있었다. 



‘너라도 좀 쉬고 있어’ 하며 자전거를 한쪽에 세웠다. 일주일 전 다녀온 지인의 조언을 따라 11~12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걸으면서도 ‘이 루트라면 흘러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덩어리 위일 텐데’ ‘단단히 굳지 않았으면 위험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날지 몰랐다. 라바가 흐르면 희뿌연 연기가 구름처럼 하늘을 메우는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싶은 의심을 잠재운 건 헬기였다. 투어에 나선 몇 대의 헬기가 상공 위를 맴맴 돌았다. 쉼 없이 돌아가는 모터는 바람의 소리를 가로지를 만큼 활기찼고 의심을 확신으로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헬기가 여기까지 오는 걸 보면 분명 있을 거야’하는 믿음으로 용암 덩어리 위를 30분 더 걸었다. ‘바스락-샤악-싹 아학’ 운동화 밑으로 불안한 기운이 덮쳤고 나는 이미 바리케이드 안에 갇혀 있었다.



순간 ‘아,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 종종걸음으로 허겁지겁 돌아 나왔다. 세워둔 자전거 옆에 털썩 주저앉아 물로 목을 축였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2년 전에 본 라바는 너무 큰 행운이었어’ ‘그래! 그렇게 라바를 본 게 어디야! 역시 여행은 타이밍이 중요해’라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이어가면서도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이번 여행에 라바 운은 따르지 않는 건가’하는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포기하긴 일렀을까. 눈앞에 나타난 네 명의 여행객은 불의 여신인 펠레(Pele)가 보내준 구세주 같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60대 부부와 파호아 마을에 산다는 20대 형제였다. 특히 형제는 정기적으로 라바를 찾는 현지인이다. 물 마시며 쉬는 척하는 중에도 눈은 그들의 동선을 주시했고, 쫑긋 세운 귀는 이미 그들에게 레이더망을 가동한 상태였다.


(to be Continue)






글, 사진 | 박성혜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 여행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함 속에서 찾는 특별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