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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 여행하는 이유

by 홍아미

[바닷마을 다이어리]

- 내가 함께 여행하는 이유


“이번에도 혼자 여행 가? 외롭지 않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되묻고 싶었다. “같이 가면 뭐가 좋나요? 불편하지 않아요?” 성향이 다른 친구들과 몇 번의 여행을 떠난 후 깨달았다. 나는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곧 죽어도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일주일의 태국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설렘보다는 걱정이 훨씬 컸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인데 여행 도중에 싸우고 서로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서울에 눈이 펄펄 내리던 2월, 배낭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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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 경비가 줄어든다

함께 여행의 첫 번째 장점,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숙소와 식당에서 계산을 할 때마다 감격했다. ‘혼자 여행할 때보다 돈이 절반으로 줄잖아!’ 도미토리 베드에서 자면 몸살이 나는 나이인지라(...) 혼자 여행할 때도 독방을 찾는데, 1인실이 잘 없어서 늘 2인실을 혼자 예약했다. 이번 태국 여행에선 꼭 가고 싶었던 방갈로를 예약했는데, 1인당 도미토리 베드 정도의 가격으로 구할 수 있어 신이 났다. 함께 식당에 가니 메뉴도 다양하게 시킬 수 있었고, 2인부터 주문 가능한 음식도 고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2. 안전하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둘이 여행하면 덜 위험하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배가 너무 고픈데 숙소가 외진 곳에 있어서 편의점에 갈 엄두를 못 낸다든지, 인적이 드문 등산로를 혼자 걸으면서 험한 일 당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상상을 하며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묵었던 태국의 방갈로는 ‘라일레이 뷰’란 이름에 걸맞게 우거진 숲 속에 있었다. 해변까지 가려면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등산로를 한참 걸어야 했다. 매일 등산로를 걸으며 이 길을 혼자 걸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무서워서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았다. 함께 오길 잘했다고 두 번째로 생각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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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일주일간의 태국 여행 일정 중 5일은 남부 끄라비에서, 이틀은 방콕에서 보내기로 했다. 조용한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나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였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또 끄라비에서 꼬리 배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야 있는 라일레이 해변까지 가는 길은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었다.


바다 앞에선 사람이 순해진다. 하루 종일 에메랄드 색 바다의 너른 수평선을 보고 있으니 서울에서부터 쌓인 긴장이 풀렸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표정부터 달라져 있었다. 라일레이 해변에 도착한 날부터 그는 아홉 살 초등학생처럼 굴기 시작했다.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바나나?’같은 말장난부터(...) 내 신발을 숨겨 놓고 모른 척하는 등 시덥잖은-가끔은 빡치기도 하는- 장난을 쳤다. 내가 반년 간 만나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이었다. 가끔 아재 개그를 시도하긴 했지만 이렇게 개구진 면모가 있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건 장난기 없는 나 역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는 것.


그 외에도 새로이 알게 된 모습은 많았다. 책 읽는 것을 숙제처럼 느낀다거나, 계획이 틀어지는 걸 불안해하는 모습, 그러다가도 내가 연결 편을 잘못 예약해 비행기를 놓칠 뻔 했을 때도 화를 내지 않는 모습까지. 여행을 하면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고 한다. 내가 본 모습이 그의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끝내 몰랐을 면모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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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풍경을 선물하기 위해서

어떤 날은 수영을 하고 돌아가는 길,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마주했다. 하늘은 형광분홍, 주황, 보라가 계속 뒤섞이며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인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넘게 한 자리에서 하늘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해가 넘어가고 천천히 수평선에서부터 어둠이 차올랐다. 곁에 있는 애인의 얼굴이 어둠에 반쯤 덮여 있었다. 애인이 처음 건넨 말은 ‘이곳에 데려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이었다. 나 역시 ‘함께 와 줘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좋다,는 말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서 좋았고,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고 함께 나눌 이가 있어서 좋았다. 어쩌면 이 노을을 서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함께 온 것이 아닐까.


5. 돌아와 할 얘기가 늘어난다

태국 여행 이후 우리 바다의 기준은 라일레이가 되었다. 양양 바다를 보고서도 ‘라일레이’보다 좀 더 깊고 파랗네라고 말하는 식. 라일레이에서 먹었던 커리 기억나? 마사지 샵도 정말 좋았는데..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추억할 때면 우리 둘만 쓰는 언어를 갖게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자 서로를 잃으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언어.


태국 여행 이후로도 여행 갈 기회가 생기면 종종 애인과, 친구와 함께 떠났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어떤 여행지에선 ‘여긴 다음에 혼자 와야지’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함께 떠나는 여행이 두렵지 않다. 함께 꺼내어 볼 수 있는 기억, 함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주는 힘을 이제는 안다.


덧. 사실은 여행이 끝날 때쯤 그간 쌓였던 것이 터져 수트 입은 남녀들이 루프탑 바에서 3시간 내내 둘 다 울면서. 싸울 땐 이 여행이 실패로 끝났다 여겨 절망적이었지만 그 기억마저도 농담거리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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