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일기를 쓴다.
"오늘은 비가 왔어요. 우산을 안 가져가서 흠뻑 젖었어요. 그런데 재미있었어요."
왜 재미있었는지는 안 썼다.
어른 같으면 이유를 설명했을 텐데. 비 냄새가 좋았다거나,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신났다거나, 친구와 함께 뛰어서 즐거웠다거나.
하지만 아이는 그냥 재미있었다고 썼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그대로 두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오늘 왜 재미있었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요. 비가 차가웠는데 따뜻한 기분이었어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때로는 설명이 감정을 망치기도 하니까.
요즘 AI 글을 보면 모든 감정에 이유가 있다.
"행복한 이유 5가지",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7가지"처럼 감정도 체계적으로 분석된다.
클릭 몇 번이면 완벽한 글이 나온다. 기승전결도 완벽하고, 논리도 탄탄하다.
어제 호기심으로 AI에게 물어봤다.
"비 맞은 아이가 왜 기뻤을까요?" 답이 나왔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자연과의 교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해방감..."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딸아이의 "그냥 따뜻한 기분"이라는 말보다 훨씬 정확하고 체계적인데도.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명확한 메시지가 없어도 괜찮다.
그저 오늘 하늘이 예뻤다는 이야기, 커피 한 모금에서 느낀 위로, 지하철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미소. 거창한 교훈이나 인사이트가 없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몇 년 전,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가 생각난다.
조회수와 하트 개수만 신경 쓰며 "반응 좋은 글 쓰는 법"을 검색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건 효과적인 글이 아니라 진짜 내 이야기였다는 걸.
AI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독자가 원하는 답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딸아이의 일기처럼 설명되지 않는 마음들, 논리로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은 여전히 사람만의 영역이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완전하다.
저작권이 보호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한 글이 아니라 불완전한 마음들.
논리적이지 않아도, 체계적이지 않아도, 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들.
할머니가 '안뇽'이라고 쓴 편지처럼, 문법은 틀렸지만 마음은 정확한 것들.
어제 저녁, 딸아이가 또 일기를 썼다.
"엄마가 웃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예뻤어요."
아이는 내가 왜 웃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행복했던 것.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고마웠고, 딸아이가 건강하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남편이 "고생했어"라고 한 마디 건넨 것이 따뜻했다.
이유 없는 아름다움,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 그것이 인간만이 가진 창작의 원천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
저작권은 결국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다.
논리보다는 마음을, 효율보다는 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