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주는 경계, 아직도 어려운 그 길

by 코난의 서재

나는 여전히 “괜찮아”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산다. 부탁을 받으면 먼저 떠오르는 건 내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얼굴이다.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나를 차갑다고 여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망설이는 사이, 입술은 이미 “응, 괜찮아”라고 대답해 버린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장애가 있는 동생을 둔 언니로서 나는 늘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공부도 더 잘하고, 더 예의 바르고, 흠이 되지 않게 살아야 했다. 부모님의 걱정과 기대를 고스란히 안고 자라면서, 흠집 하나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압박이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안 돼”라는 말은 내 입술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을 챙긴 기억은 많지 않다. 거울 속의 나는 늘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지쳐 있었고, “괜찮아”라는 입꼬리는 어색하게 올라가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장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평소처럼 “응, 괜찮아”라고 답할 상황에서 용기 내어 “미안해, 오늘은 좀 힘들어”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상대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놀랍게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상대방은 담담하게 “알겠어, 다음에 부탁할게”라고 말했다. 그 순간 느꼈던 안도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알았다. 경계는 차갑게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정원에 울타리를 치는 일이라는 걸. 울타리가 있어야 꽃이 제자리를 지키며 건강하게 피어나듯, 나라는 사람도 나만의 울타리 속에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거절은 지금도 어렵다. 몸이 아픈데도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돌아와 더 지쳐 쓰러지는 날이 있고, 그럴 때마다 ‘왜 또 그랬을까’ 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가끔 거절에 성공했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연습 중이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거절이라는 낯선 언어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기를. “오늘은 어려워. 하지만 고마워.”

거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누군가를 향한 차가운 벽이 아니라, 나를 향한 가장 따뜻한 안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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