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이 이기심이 아니라는 깨달음

by 코난의 서재

"엄마는 언제 혼자 있어?"

딸이 갑자기 던진 이 질문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혼자 있는 시간? 그게 뭐지?

생각해보니까 진짜 웃겼다. 화장실 갈 때도 "엄마 어디가?" 하고, 샤워할 때도 문 앞에서 "엄마 이거 어떻게 해?" 했다. 심지어 새벽 3시에 물 마시러 나가도 누군가 일어나서 "엄마 뭐해?" 하는 게 우리 집이었다.


그날 밤에 곰곰 생각해봤다. 언제부터 내 시간이라는 게 없어졌을까?

결혼 전에는 그래도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멍 때리기도 하고, 주말에 혼자 영화 보러 가기도 했다.

결혼하고도 처음에는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지" 하면서 이해해줬다.


그런데 애 낳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스스로 포기한 거였다.

"엄마는 애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해" 이런 마인드로 살았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죄악시했다.


카페에서 혼자 커피 마시고 싶어도 "그 돈으로 애 간식이라도 하나 더 사줘야지" 생각하고, 주말에 혼자 쇼핑하고 싶어도 "가족과 시간 보내는 게 우선이지" 하면서 참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나? 어느 날 거울을 보니까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있더라. 눈에 생기는 없고, 말하는 것도 애들 얘기, 남편 얘기뿐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나만의 취미나 관심사가 없으니까. "요즘 뭐해?" 하면 "그냥... 애들 키우고 살지 뭐" 이게 끝이었다.


터닝포인트는 작년 여름이었다.

엄마들끼리 모임이 있었는데, 한 언니가 그러더라. "나 요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1시간씩 혼자 시간 가져. 진짜 인생이 달라졌어."

처음엔 "에이, 그게 뭐가 달라져?" 했는데, 그 언니 표정이 진짜 밝아 보였다. 뭔가 여유로워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봤다. "그 시간에 뭐해?"

"별거 안 해. 그냥 혼자 커피 마시면서 멍 때리거나, 책 읽거나, 유튜브 보거나."

"애들은? 남편은?"

"다들 자고 있어. 나만의 시간이야."


그날 밤에 생각해봤다. 나도 해볼까? 그런데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 도시락 미리 준비해두면 아침이 더 편할 텐데... 빨래라도 개어둘걸...

근데 어차피 잠도 안 와서 다음 날부터 시도해봤다.

첫날: 5시 50분에 알람 맞춰놨는데 너무 피곤해서 껐다.

둘째날: 6시에 일어났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폰만 만졌다.

셋째날: 일어나서 거실에 앉아있는데 남편이 일어났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그냥..." 대답도 못했다.

일주일 정도는 진짜 어색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2주차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 시간만큼은 진짜 조용했다. 아무도 "엄마" 하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혼자 커피 마시면서 창밖만 봐도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3주차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애들 책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 오랜만에 활자에 집중하니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한 달 쯤 지나니까 신기한 일이 생겼다.

애들한테 덜 짜증났다. 전에는 "빨리빨리!"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아침에 1시간 혼자 있다 오니까 여유가 생겼다.

남편도 그러더라. "당신 요즘 뭔가 달라졌는데?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진짜? 나도 모르게 변한 거였나?


제일 신기했던 건, 가족들한테 더 잘해지더라는 거였다. 전에는 의무감으로 했다면, 이제는 정말 사랑해서 하는 기분이었다. 충전이 되니까 줄 게 더 많아진 느낌?

지금은 아침 1시간이 하루의 시작이 됐다. 그 시간만큼은 완전히 내 것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아무한테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은 여기서 더 욕심이 생겼다. 주말에도 2시간씩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카페 가서 멍 때리기도 하고, 혼자 쇼핑하기도 하고.

처음엔 "나 카페 좀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했는데, 이제는 당당하다. "엄마도 쉬는 시간 필요해" 이러면서.


딸이 그러더라. "엄마 요즘 많이 안 무서워졌어." 하하, 내가 그렇게 무서웠나? 그냥 늘 지쳐서 예민했던 거였다.

지금은 남편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에 자전거 타러 가는데, 전에 같으면 "집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놀러가?"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잘 다녀와" 한다.


우리 가족이 각자의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더 건강해진 것 같다. 서로에게 매달리지 않고,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끼는 것 같다.

거의 50이 다 되는 해를 살아오면서 이제야 알았다. 나를 돌보는 게 이기심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걸. 빈 그릇으로는 아무것도 줄 수가 없잖아.

요즘 동네 엄마들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언니, 혼자만의 시간 가져. 진짜 인생이 달라져."


P.S. 지금 이 글 읽고 있는 당신, 언제가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봤나? 내일부터라도 30분씩 시작해봐. 죄책감 들어도 꾹 참고^^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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