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연습

by 코난의 서재

지난주 목요일, 친구와 통화하다가 울 뻔했다.
별것 아닌 말이었다. “너 요즘 좀 예민한 거 아니야?” 한 마디. 그런데 갑자기 목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으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이 나이에 이런 것도 못 견디나?’

곰곰이 돌아보니, 이미 아침부터 지쳐 있었다. 엄마와의 통화,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 지인의 자랑 섞인 이야기. 친구의 말은 그저 마지막 한 방울이었다.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아는 법이 없었다는 걸.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늘 “그냥 괜찮아”로 답했다. 큰일 없으면 괜찮고, 별일 없으면 괜찮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았을까? 아니, 그냥 모른 척했을 뿐이었다.

젊었을 땐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선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감정을 드러내는 게 비효율적이라 여겨졌다.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상황이 먼저였다. 그렇게 20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뭘 느끼는지조차 흐릿해졌다.

변화는 작년 가을,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잠이 안 온다는 게 이미 힘들다는 신호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받은 숙제는 ‘하루에 감정 세 가지 적기’. 처음엔 피곤, 졸림, 배고픔만 썼다. 그게 감정이 아니라는 지적에 멋쩍게 웃었다.

몇 달이 지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엄마 전화를 받을 때: 긴장, 죄책감, 방어


남편과 대화할 때: 분노, 억울함, 무시당한 느낌


혼자 저녁을 보낼 때: 홀가분함, 해방감, 외로움


같은 순간에도 여러 감정이 겹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얼마 전 남편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여보, 나 오늘 서운했어.”
남편은 놀라며 물었다. “뭐가?”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힘든 하루였는데 전화했더니 바쁘다며 끊었던 것, 집에 와서도 핸드폰만 보던 것. 사소하지만 나는 외롭고 서운했다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미안. 몰랐어. 말해줘야 알지.”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나는 말하지 않은 채 눈치만 바랐다.

친구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 요즘 네 말에 상처받더라.” 친구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왜 진작 말 안 했어?” 묻기에, 그냥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참았다고 대답했다.

이제야 배운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이건 감정에 휘둘리자는 게 아니다. 감정을 무기로 쓰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뭘 느끼는지 알고, 그걸 인정하는 것.

화가 나면 화났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는 것.
그 단순한 연습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늦은 40대의 작은 법칙.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나는 이제 내가 왜 우는지 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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