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안전망

by 코난의 서재


나는 종종 기록을 '숨 쉴 틈'이라고 부른다. 남들은 그저 일기라 하고, 편지라 하고, SNS에 쓰는 짧은 글이라 했지만, 내게 그것은 억눌린 마음을 풀어내는 유일한 통로였다.


1. 억눌린 순간, 글을 붙잡다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대학 시절 기숙사 방이다. 하루 종일 쌓인 억울함과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둔 작은 수첩을 꺼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볼펜 끝을 종이에 대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첫 문장은 비뚤어졌지만 상관없었다. 글자들이 줄을 이루며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문장들은 울음보다 먼저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오늘도 살아냈다."


한 줄을 적고 나니, 세상이 나를 몰아붙여도 다시 버틸 힘이 생겼다. 펜을 놓고 수첩을 덮을 때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져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글은 증명도, 변명도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노트 안에서만큼은 내 마음을 검열할 이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있었다.


2. 편지로 되찾은 나의 목소리


어느 시기는 가족과의 갈등이 벽처럼 느껴졌던 때였다. 직접 말로는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로 써 내려갔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거실 소파에 앉아 편지지를 펼쳤다.


"나도 힘들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싶다."


평소라면 삼켰을 문장들을 종이 위에서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세 번을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봉투에 넣지 않고 서랍 깊이 넣었다. 전하지 못한 편지였지만, 쓰는 동안만큼은 내 목소리가 또렷하게 살아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미 편지를 쓰는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의 자유를 되찾고 있었으니까.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끝에 침대 맡에 앉아, '오늘은 내 편이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몇 줄을 적었다. 때로는 나 자신이 유일한 편이라는 답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문장을 적고 나면 이상하게도 고독이 덜 무겁게 느껴졌다.


3. 글쓰기는 나의 저항이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그날 밤 나는 노트북을 열어 사건의 전말을 꼼꼼히 기록했다. 날짜, 시간,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누군가는 "그냥 넘어가라"고 했지만, 나는 지우지 않고 남겼다. 그 기록은 내가 겪은 일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증거였고,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표였다.


기록은 삶을 놓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고, 편지는 내 존재를 지워지지 않게 하는 흔적이었다. 글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더 쉽게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나를 지키는 방패였고, 때로는 세상을 향해 휘두르는 작은 칼이었다.


4. 앞으로의 다짐


이제 나는 안다. 글쓰기는 나만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자, 공동체와 연결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나는 작은 기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하루를 써내려가며, 다른 누군가가 자기 목소리를 찾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내 글 한 줄이 누군가의 답답한 가슴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유롭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다시 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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