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가을, 세상은 온통 'IMF'라는 단어로 가득했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신문 1면은 매일같이 붉은 숫자와 위기라는 단어로 뒤덮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대학생이었다. 스무 살 청춘의 기세에 취해, 다시 입시에 도전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시선은 오직 내 앞길에만 닿아 있었고, 세상이 요동치는 소리조차 내겐 아득하게 멀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기억은 내게 크게 선명하지 않다. IMF는 그저 뉴스 속 단어였고,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잠깐 스쳐가는 화제였을 뿐이다. 집에 자주 내려가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표정 속에 깃든 그 무거움을 읽어내지도 못했다. 내 삶은 여전히 시험공부와 친구들과의 약속, 도서관에서의 하루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살아가다 보니 그 시절의 무게가 뒤늦게 가슴을 친다. 지금 나 또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단 한 달의 수입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드는데, 그때 부모님은 매일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어떻게 건너셨을까. 나는 알지 못했고, 묻지도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부모님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지금의 내가 그 침묵을 떠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온다. IMF라는 세 글자가 내겐 뉴스의 배경음이었지만, 부모님에겐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바람이었다는 것을.
그때 부모님이 지켜낸 하루하루, 그 속의 침묵과 버팀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을— 10월은 그렇게, 내게 뒤늦은 계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