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떡 냄새

by 코난의 서재

제주 명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기름떡 냄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끝을 스치는 그 구수하고 고소한 냄새. 어느 집을 가든 부엌에선 할머니들이 기름떡을 부치고 계셨고, 나는 그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추석이면 우리 가족은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큰집, 작은집, 외가, 그리고 이름도 잘 모르는 먼 친척 집까지. 차 안에서 아버지는 "여긴 네 고종사촌 할머니 댁이야"라고 설명하셨지만,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 누가 누군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아이였던 나는 그저 따라다니며 얻어먹는 과자 한 봉지가 신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분주한 하루 속에서 어른들이 나누는 인사와 덕담, 그리고 아버지가 정성스레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명절은 단순한 쉬는 날이 아니라, 가족을 이어주는 시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

그런데 고3을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제주-서울을 오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명절마다 내려가는 것도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학교 일정, 아르바이트, 친구들과의 약속... 핑계는 많았다. 그렇게 몇 번 빠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가끔 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년 추석, 카톡으로 조카 사진을 받았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훌쩍 자란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나는 그 아이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먼 친척'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집을 돌지는 않는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때의 기억 덕분에 명절이 주는 의미만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명절은 결국, 안부를 묻고 마음을 잇는 날이라는 것.

앞으로 내가 이어가고 싶은 명절도 화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때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소중한 이들을 챙기고 마음을 전하는 날로 남기고 싶다. 제주의 기름떡 냄새는 여전히 내 기억 속 명절의 맛이지만, 이제 나는 내 방식으로, 작지만 진심 어린 명절을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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