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다

by 코난의 서재

지난 토요일 오후, 집에 혼자 남았다. 남편은 동호회 모임에 나갔고, 아이들은 각자의 약속이 있었다. 문득 정적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 조용한 집이 언제부터였을까.

냉장고를 열었다. 김치와 계란, 그리고 어제 남은 밥. 그것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식탁에 앉았다. 누구의 반찬 투정도, 간이 어떻냐는 질문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시간.

이상하게도 그 밥이 맛있었다. 정확히는 맛있다기보다 편안했다.


이십 대의 나에게 지금 이 장면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외롭지 않아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혼자라는 것을 두려워했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불안했고, 저녁 시간 혼자 집에 있으면 세상에서 나만 소외된 것 같았다.

친구들의 SNS에는 늘 즐거운 일상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맛집에서,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웃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급해졌다. 나도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돌리곤 했다.


삼십 대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관계'에 얽매여 있었다. 엄마들 모임, 동네 커뮤니티, 각종 네트워킹. 빠지면 뒤처지는 것 같았고, 정보에서 소외될까 봐 피곤해도 자리를 지켰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는 더 그랬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일이 끊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십 대 중반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변화는 조용히 왔다

대학 동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당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그날 나는 유난히 피곤했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친구의 목소리에서 힘든 기색이 느껴져 결국 약속을 잡았다.

세 시간 가까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 남편과의 갈등, 아이 교육 문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힘들었겠다",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몸만 피곤한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공허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을 쓰고 있을까?'


내가 원해서 만난 것도 아니었고, 내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 물론 친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약속 제안이 들어오면 한 번 더 생각했다.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면 의무감에서 만나는 것인가.' 처음에는 거절하는 것이 어색했다. 상대방이 실망하지 않을까, 관계가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상은 내가 모든 약속에 응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더 명료해졌고, 진짜 소중한 관계들이 선명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다

지금은 금요일 저녁을 내 시간으로 비워둔다. 가족도 안다. 이 시간만큼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있는다는 것을.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동네를 천천히 걷기도 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졸기도 한다. 때로는 그냥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이십 대의 나였다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풍경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것이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일주일 동안 쌓인 감정들이 가라앉고, 생각들이 정리되고, 나라는 사람이 다시 선명해지는 시간. 마치 컴퓨터를 재부팅하듯, 나를 다시 켜는 시간.

작년부터는 혼자 식사하는 것도 즐기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 핸드폰도 보지 않고, 그저 음식의 맛에 집중한다.


오십을 바라보며 떠난 혼자만의 여행

작년 가을이었다. 문득 '나 혼자 여행을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좋지, 다녀와" 했다. 아이들도 "엄마 힐링하고 와요" 했다. 그렇게 쉽게 결정되었지만, 막상 항공권을 예매하려니 손이 떨렸다.

일본 교토로 정했다. 삼박사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혼자서 호텔 체크인을 하고, 혼자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기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교토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낯선 거리와 낯선 언어였다. 지도를 보며 헤매기도 하고, 식당에서 메뉴판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괜찮았다.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첫날 저녁, 골목길에 있는 작은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카운터 좌석에 혼자 앉았다. 옆자리에는 현지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사케를 한 잔 시켰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마셨다.

그 순간 알았다. 이 시간이 전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오랜만에 나를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튿날은 철학의 길을 따라 걸었다.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조용한 곳으로 걸어갔다. 단풍이 물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남편이 물었다. "재밌었어?"

"응, 좋았어."

"뭐가 제일 좋았어?"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무도 나한테 뭘 기대하지 않았던 거."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사람들은 종종 혼자 있는 것을 외로움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오십을 바라보며 살아보니 확실히 안다. 고독과 외로움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온다. 수십 명이 모인 모임에서도, 가족과 함께 앉은 식탁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고독은 선택이다. 스스로 원해서 혼자가 되는 것,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혼자 미술관에 가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들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가끔 묻는다. "요즘 모임에 잘 안 나오네요. 바쁘세요?"

사실은 바쁘지 않다. 단지 나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까 봐 "응, 요즘 일이 좀 많아서"라고 얼버무린다.

특히 엄마들 모임을 자주 불참하면 약간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웃긴 것은 나는 직업상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난다. 교육컨설턴트가 사회성이 없다면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단지 선택했을 뿐이다. 형식적인 만남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관계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역설적이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인간관계는 더 좋아졌다.

예전의 나는 타인에게 의존적이었다. 누군가 나를 채워주기를 바랐고, 관계를 통해 나의 가치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채울 수 있게 되자, 만남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이제는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서 사람을 만난다. 체면이나 의리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만난다. 그리고 만났을 때 더 온전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다. 내 안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오십을 바라보며

만약 이십 대의 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혼자 있는 게 왜 좋은데요?"라고 물을 것이다.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확신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것, 그것은 나이가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과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능력.

토요일 오후, 조용한 집. 김치볶음밥 한 그릇.

이것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의 작은 행복이다.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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