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어머니가 상담실에 오셨다.
"선생님, 우리 애가 '공부하기 싫어'래요. 매일 그 말만 해요."
그분의 목소리에는 지침이 묻어났다. 매일 같은 말을 듣고, 매일 같은 실랑이를 하는 피로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당연히 '싫어도 해야지' 했죠. 그랬더니 방문 쾅 닫고 들어가더라고요."
나는 물었다.
"혹시... 그 말 뒤에 다른 말이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아이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듣지 못한다.
민준이는 중2다. 매일 오후 4시, 학원에 가기 전 엄마에게 말한다.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
엄마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한다.
"무슨 소리야. 가야지."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민준이는 여전히 묻고, 엄마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한다.
어느 날, 상담실에서 민준이에게 물었다.
"학원 가기 싫다는 말, 정말 학원이 싫어서 하는 말이야?"
민준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니요... 사실은... 영어가 너무 안 돼서요. 학원 가면 모르는 게 많아서 창피하고... 그냥 도망치고 싶어요."
나는 깨달았다.
"학원 안 가면 안 돼?"라는 말 뒤에는 "나 지금 너무 힘들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아니, 말할 줄 모른다.
"공부하기 싫어"라는 말은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무서워"일 수 있다.
"학교 가기 싫어"라는 말은 "친구한테 무시당해서 상처받았어"일 수 있다.
"엄마는 나만 미워해"라는 말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는가?
"싫어도 해야지." "그런 소리 하지 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만 듣고 대답한다. 마음은 듣지 않는다.
서연이는 고1이다. 시험 기간만 되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번에도 망할 것 같아."
엄마는 속상하다.
"왜 맨날 그렇게 부정적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조금 다르게 물어봤다.
"망할 것 같다는 게... 어떤 느낌이야?"
서연이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사실... 열심히 했는데 또 안 나올까 봐 무서운 거예요. 기대하면 더 실망할 것 같고..."
그 순간, 엄마는 알았다.
"망할 것 같아"는 부정적인 말이 아니었다. "나 지금 불안해. 위로해줘"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눈은 불안한 아이. 말은 건방지지만 손은 떨리는 아이. 웃으면서도 혼자 울고 있는 아이.
그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줬다.
말과 마음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아이. "상관없어"라고 하지만 상처받은 아이. "공부 안 해"라고 하지만 하고 싶은 아이.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부모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면 아이도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야 할까?
하나. 질문 하나를 바꿔본다.
잘못된 질문: "왜 그런 말을 해?"
올바른 질문: "그 말을 하게 된 마음이 어땠어?"
둘. 말 뒤의 감정을 읽는다.
아이: "공부하기 싫어." 부모: "공부가... 지금 부담스러운가 보구나."
아이: "학교 가기 싫어." 부모: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셋. 확인하지 말고 기다린다.
"그래서 뭐가 힘든데?"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그저 곁에 있어준다.
민준이 엄마는 조금씩 달라졌다.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
"학원 가는 게 많이 부담스러운가 보구나. 무엇 때문에 그런 거야?"
처음에 민준이는 놀랐다. 엄마가... 물어본 것이다.
그날 저녁, 민준이는 처음으로 말했다.
"사실 영어가 너무 안 돼요. 학원 가면... 바보 같아요."
엄마는 그제야 알았다. 아이가 6개월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성적은 극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이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 마음을 들어준다는 걸 알았으니까.
마음을 듣는다는 건 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게 아니다.
말 너머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이다.
"싫어"라는 말 뒤에 "무서워"가 있고 "안 해"라는 말 뒤에 "못해"가 있고 "상관없어"라는 말 뒤에 "상처야"가 있다는 걸
우리가 먼저 알아주는 것.
그게 시작이다.
오늘, 당신의 아이는
어떤 말을 했나요?
그 말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요?
오늘 하루만. 딱 한 번만.
아이의 말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괜찮아"가 아니라 "괜찮지 않구나"를. "싫어"가 아니라 "힘들었구나"를. "상관없어"가 아니라 "상처였구나"를.
말과 마음 사이. 그 작은 틈을 메우는 게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일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