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표 좀 세워봐."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계획표, 제대로 지켜진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상담실에서 민준이(중2)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책상 위에는 형형색색 펜으로 칠한 계획표가 붙어 있었다. 시간대별로 빼곡하게 적힌 과목들. 일요일까지 계획이 차 있었다.
"와, 계획표 정말 잘 세웠네."
민준이가 피식 웃었다.
"선생님, 이거 세 번째예요. 한 번도 지킨 적 없어요."
왜 그럴까.
민준이에게 물었다.
"계획 세울 때 기분이 어때?"
"좋아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달라질 것 같고."
"그럼 다음 날 아침은?"
"...하기 싫어요."
여기서 중요한 게 보인다.
계획을 세우는 건 '미래의 나'에게 맡기는 일이다. 하지만 실행하는 건 '지금의 나'다.
문제는,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다리가 없다는 것.
계획표는 화려하지만, 정작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비어 있다.
그래서 나는 민준이에게 계획표를 치우자고 했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민준아, 요즘 뭐가 제일 짜증나?"
"수학이요. 진짜 하기 싫어요."
"왜 하기 싫은 것 같아?"
"몰라요... 해도 안 되니까?"
거기였다.
'해도 안 된다'는 생각. 이게 먼저 풀려야 한다.
계획보다 먼저 필요한 건, 지금 내가 왜 멈춰 있는지 아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나를 아는 것.' '내 상태를 아는 것.'
지금 뭐가 막혀 있는지, 왜 하기 싫은지, 언제 그나마 할 수 있는지.
이걸 모르면 어떤 계획도 공허하다.
민준이와 한 달을 보냈다.
계획표는 세우지 않았다. 대신 매일 세 가지만 적게 했다.
하나. 오늘 공부하면서 뭐가 힘들었어? 둘. 그나마 할 만했던 건 뭐야? 셋. 내일은 뭘 먼저 해볼까?
단순했다. 하지만 이게 쌓이자, 민준이가 달라졌다.
"선생님, 저 수학은 아침에 하면 안 되겠어요."
"왜?"
"아침엔 머리가 안 돌아가요. 영어 단어 같은 거 먼저 하고, 수학은 점심 먹고 해야 해요."
스스로 자기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계획표를 다시 꺼냈다. 이번엔 형형색색이 아니었다. 수학은 오후에. 아침엔 가벼운 것부터.
"이번엔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준이의 말이었다.
부모님들께 늘 드리는 말씀이 있다.
"계획 세워!"라고 다그치기 전에, 잠깐 물어봐 주세요.
"요즘 공부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어?"
아이가 대답하든, 대답하지 못하든, 그 질문 자체가 시작이다.
계획은 그 다음이다.
먼저, 지금 여기 서 있는 아이를 봐야 한다. 왜 멈춰 있는지, 뭐가 무거운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그걸 모르면 아무리 예쁜 계획표도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오늘, 아이에게 계획 세우라는 말 대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요즘 공부하면서 제일 막히는 게 뭐야?"
거기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