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유

by 코난의 서재


서른 살 즈음, 나는 실패가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면,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한 내 모습을 남들이 보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확실하지 않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안 될 것 같으면 먼저 손을 뗐다. 안 한 거지, 못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피해 다닌 실패들이 결국 나를 더 작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물었다. "요즘 뭐 새로 시작한 거 있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자기 얘기를 했다. 쉰이 넘어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첫 수업에서 물에 얼굴도 못 담갔다고. 강습생 중에 제일 못해서 강사가 따로 붙어 있어야 했다고. 그 얘기를 하면서 선배는 웃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창피하지 않으세요?" 내가 묻자 선배가 말했다. "창피하지. 근데 그게 어때서? 못하면 배우면 되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못하면 배우면 된다. 단순한 말인데,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아니, 알았는데 믿지 않았던 걸까.


사실 나도 실패한 적이 있다. 아니, 많다. 다만 그걸 실패라고 부르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이다.

삼십대 초반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됐을 때, 나는 "원래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몇 년 후 승진에서 밀렸을 때는 "난 그쪽엔 관심 없어"라고 했다. 용기 내서 시작한 부업이 수익 없이 끝났을 때도 "그냥 취미였어"라고 포장했다.


그렇게 실패를 숨기고 부정하면서 나는 점점 새로운 시도를 안 하게 됐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처음부터 피하는 게 편했으니까. 그게 얼마나 나를 좁은 곳에 가뒀는지도 모른 채.

마흔일곱 되던 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막연히 품어온 바람이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두려웠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 "별로네" 하면 어쩌지? 아무도 관심 없으면? 그 나이 먹고 이제 와서 글이 뭐냐고 비웃으면?


며칠을 망설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서 뭐 어때서? 잘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그래도 세상이 끝나진 않잖아.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실패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를 규정할 것 같았다. 지금은 안다. 실패 한 번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실패 없이 살아온 인생이 더 빈약하다는 걸.


돌아보면 내가 성장한 순간들은 대부분 실패 직후였다. 뭔가 안 됐을 때, 그래도 다시 일어났을 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성공했을 때는 그냥 기뻤을 뿐이고.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뭔가를 시도했다는 증거이고, 살아있다는 신호다. 실패를 피하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그게 진짜 실패다.


50대를 앞둔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실패한다. 새로운 걸 배우다가 못 따라가기도 하고, 용기 내서 한 제안이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편하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니까, 시도하는 게 두렵지 않다. 시도하니까 가끔은 되기도 한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서툴러도 해보는 것. 그게 이 나이에 내가 찾은 삶의 방식이다.

혹시 지금 뭔가 시작하고 싶은데 실패가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다면, 이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안 되면 뭐 어때서?" 정말로, 안 되면 뭐가 어떤가. 세상이 끝나나. 아무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실패에 그렇게 관심 있을 만큼 세상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


그러니까 해보자.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되면 좋은 거다. 그게 전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유. 그건 용감해져서가 아니다. 그냥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실패보다 더 후회되는 건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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