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주말마다 약속이 있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빈 칸이 있으면 불안했다. 연락처에 이름이 많을수록 뭔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모임에 불려 다니고, 단톡방이 수십 개씩 있었고, 그게 다 '인맥'이라고 믿었다.
그
런데 40대 후반이 되니까 알겠더라.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진짜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됐는지.
작년에 큰일이 있었다. 자세한 건 말 못하지만, 정말 바닥까지 내려갔던 시간이었다. 그때 연락처를 뒤적이면서 깨달았다. '이 사람한테 전화해도 될까?' 고민되는 사람은 결국 전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수백 명의 연락처 중에 새벽 2시에 전화해도 받아줄 것 같은 사람. 울면서 전화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할 사람. 손에 꼽았다. 진짜로 손에 꼽았다.
처음엔 서글펐다. '내가 이렇게 외로운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외로운 게 아니었다.
그 손에 꼽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랐던 거다.
지금 내 곁에 남은 친구들. 우리는 매일 연락하지 않는다. 몇 달에 한 번 겨우 만난다. 단톡방에서 활발하게 수다 떠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하다. 힘든 얘기를 해도 조언하려 들지 않고 그냥 들어준다. 잘 됐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해준다.
이게 진짜 친구구나, 싶었다.
30대까지만 해도 난 관계를 숫자로 셌다. 결혼식에 몇 명이 왔는지, 생일에 축하 메시지가 몇 개 왔는지. 그게 내 인생의 스코어 같았다.
그런데 50을 앞둔 지금,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다. 내가 허세 부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약한 모습 보여도 실망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한 명이 피상적인 인연 백 명보다 낫다는 걸 이제야 안다.
요즘은 새로운 모임에 무리해서 나가지 않는다. 의무적인 연락도 줄였다. 대신 진짜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정성을 쏟는다. 안부 문자 하나도 건성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걸 두고 "나이 들면 사람 만나기 싫어지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정반대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지 않는 거다.
지금 내 연락처는 예전보다 훨씬 정리됐다. 단톡방도 많이 나왔다. 주말에 약속 없는 날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이 더 풍요롭다.
진짜 내 편인 사람 몇 명. 그 사람들과 나누는 깊은 대화 한 번. 그게 내 40대 후반을 단단하게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