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바꾸려하지말고 거리를 조절하는 법

by 코난의 서재


30대 때 나는 진짜 오지랖이 넓었다.

누가 고민 얘기하면 가만히 못 있었다.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미 해결책을 짜고 있었다. "그건 네가 이렇게 하면 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내 조언대로만 하면 다 잘 풀릴 것 같았다.

10년 넘게 친하게 지낸 언니가 있었다. 만나면 매번 남편 얘기였다. 집에 와서 말도 안 하고, 주말에는 골프만 치고, 기념일도 까먹고. 처음엔 "진짜? 너무하네" 하면서 같이 욕했다. 그러다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언니, 그럼 한번 대화를 해봐. 서운하다고." 언니는 "그래, 그래야지" 했다. 다음에 만나면? 똑같은 얘기. 나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니,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잖아. 진짜 어떻게 좀 해봐."

그날 언니 표정, 아직도 기억난다. 뭔가 닫히는 느낌. 우리는 그 뒤로 자주 안 만나게 됐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언니는 해결책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래, 힘들었겠다" 한마디면 됐던 거다.


40대 중반 어느 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공들인 관계가 있었다. 이 사람만 좀 바뀌면 진짜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돌려 말하고, 직접 말하고, 책도 추천하고, 별짓을 다 했다. 결과?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 오히려 나만 지쳤다. 밤에 잠도 잘 못 자면서 "왜 저 사람은 저럴까" 곱씹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그때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내가 상대를 바꾸려고 했던 건, 사실 순수한 걱정이 아니었다. 저 사람이 내 기준에 맞춰주면 내가 편하니까. 내가 덜 짜증 나니까. 포장만 좋았지, 결국 이기심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상대를 바꾸려는 대신, 거리를 조절하기로.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사람, 다들 주변에 한 명쯤 있지 않나. 만나고 나면 왜인지 모르게 축 처지는 사람. 예전엔 "그래도 오래 알았는데" 하면서 억지로 약속 잡았다. 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지금은 다르다. 조용히 거리를 둔다. 카톡 답장 속도를 늦춘다. 바로 답하던 걸 몇 시간 뒤에.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요즘 좀 바빠서~" 한다. 티 안 나게. 싸우지 않고.

웃긴 건, 거리가 생기니까 오히려 편해졌다는 거다. 가끔 만나니까 반갑더라. 짧게 보니까 짜증 낼 틈도 없고.


요즘 나는 인간관계를 동그라미로 생각한다.

한가운데 작은 원. 여기엔 진짜 내 편인 사람 서너 명. 힘들 때 새벽 두 시에 전화해도 되는 사람들. 이 사람들한테는 시간이고 에너지고 아끼지 않는다.

그 바깥에 좀 더 큰 원. 종종 연락하고, 가끔 밥 먹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지만 모든 걸 나누진 않는다.

더 바깥? 아는 사람들.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 묻는 정도.

예전엔 모든 사람을 안쪽 원에 욱여넣으려고 했다. 그래야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모든 사람이랑 가까울 필요 없다. 어떤 사람은 바깥 원에 있는 게 서로한테 맞다.

이상한 일이 있다.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가끔 상대가 변한다. 내가 뭐라 안 하니까 방어할 필요가 없어지나 보다. 스스로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은 그대로다. 근데 이제 괜찮다. 그건 그 사람 인생이니까.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50 코앞에 두고 배운 거다.

관계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나와 상대 사이의 거리.

너무 가까우면 상처받는다. 너무 멀면 섭섭하다. 그 사이 어딘가,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가 유지되는 그 거리.

그걸 찾는 게 지금 내 숙제다.

가끔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내가 널 도와줄게" 하면서 달려들던 그 시절의 나.

지금은 그때의 나한테 말해주고 싶다.

야, 그 에너지 네가 써. 바꿀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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