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단톡방에 내가 쓴 댓글 위로 다른 사람들 대화가 쭉쭉 올라갈 때,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이상한 말 했나? 분위기 깬 건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가도 몇 분 후면 다시 들여다봤다. 혹시 누가 내 말에 반응해줬나. 이모티콘 하나라도 달렸나. 아무것도 없으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모임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오늘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아니면 너무 조용했나?' 하루 종일 했던 대화들을 되감기하며 나를 채점했다. 저 사람 표정이 왜 그랬지? 내 농담이 재미없었나? 밤새 그 생각만 했다.
직장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답장이 올 때까지 불안했다. 답장이 짧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고, 답장이 늦으면 '나한테 실망한 건가' 생각했다. 상대방의 말투 하나하나에 내 가치를 맞춰가며 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였다. 한 달 동안 공들여 준비한 제안이 거절됐다. 예전 같았으면 일주일은 우울해하며 '내가 뭐가 부족했을까' 곱씹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서, 내가 형편없는 건 아니잖아.'
너무 단순한 생각인데,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내 가치의 증거로 삼았던 거다. 누군가 날 인정해주면 나는 괜찮은 사람, 누군가 날 무시하면 나는 부족한 사람. 매번 그렇게 나를 정의했다.
이십대엔 그래도 괜찮았다. 젊으니까,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근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졌다. 이제 곧 50대인데, 아직도 이 모양이야?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해?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인정은 더 절실해졌다. '내가 아직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증거가 필요했으니까.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불안정한 삶이었다. 내 기분이 매번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으니까. 오늘 누가 날 알아주면 기분 좋고, 내일 누가 날 무시하면 바닥으로 떨어지고.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하루.
그래서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아침에 거울을 볼 때 나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할 거야."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면 돼." 처음엔 너무 쑥스러웠다. 이 나이에 거울 보고 혼잣말이라니. 그래도 계속하다 보니,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내가 잘한 일도 적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것도. "오늘 힘들었는데 포기 안 했다." "친구 이야기 잘 들어줬다." "약속 시간 지켰다." 적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많은 걸 해내고 있더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몫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날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스타일이 안 맞을 수 있다. 내 말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나를 형편없게 만들진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한테 좋은 사람일 수 없으니까.
대신, 나는 나한테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금도 가끔 흔들린다. 단톡방에 내 댓글만 덩그러니 남아있으면 여전히 순간 움찔한다. 누군가 무뚝뚝하게 대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진다.
하지만 예전처럼 며칠씩 그 생각에 갇혀 있진 않는다.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중심을 잡는다. '괜찮아. 그 사람도 바빴을 거야. 아니면 그냥 우리가 안 맞는 거일 수도 있어. 그게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아.'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 조금 다른 사람이 보인다.
주름은 더 깊어졌고,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 누군가의 '좋아요'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얼굴. 내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얼굴.
이제 곧 50대다.
그동안은 숫자가 두려웠는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50대에는 이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서 나오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그게 바로,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찾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재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