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와 통화하다가 또 그 말씀을 들었다.
"넌 왜 전화를 그렇게 안 하니."일주일에 두 번은 꼬박꼬박 전화하는데도 이 말씀은 변함이 없다. 예전 같으면 죄책감이 밀려왔을 텐데, 요즘은 그냥 "네, 더 자주 할게요" 하고 넘긴다. 속으로는 '이건 엄마의 외로움이지, 내 불효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면서.
부모님과의 관계에 '관리'라는 단어를 붙이면 왠지 불효자 같은 느낌이 든다. 관리라니. 부모님을 무슨 업무처럼 대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40대 후반이 되니까 알겠더라. 이게 냉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30대까지는 부모님 말씀이면 무조건 "네"였다. 명절에 못 가면 죄인이 된 것 같았고, 부모님이 섭섭해하시면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치고, 지치면 연락을 피하고, 피하면 또 죄책감에 시달리고. 악순환이었다.
변화의 계기는 사소했다.
몇 년 전, 설 연휴에 일이 생겨서 시댁만 갔다 오고 친정에는 다음 주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전화로 삐치셨다. 평소 같으면 죄송하다고,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갈게요, 했을 텐데 그날따라 입이 안 떨어졌다.
"엄마, 나도 지금 많이 힘들어. 다음 주에 갈게."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당황하셨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갔는데,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더 편했다. 억지로 맞춘 게 아니라 진짜 가고 싶어서 간 거니까. 엄마도 뭔가 느끼신 게 있으셨는지 잔소리가 줄었다.
그때 깨달은 게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어른 대 어른의 관계라는 것. 나는 이미 마흔일곱이고, 부모님은 일흔이 넘으셨다. 더 이상 "시키면 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아직도 어린애니까.
"니가 뭘 안다고"라는 말씀은 여전히 들린다. 예전에는 그 말에 상처받거나 억울했는데, 요즘은 그냥 흘린다. 부모님 세대에게 자식은 늘 어린아이인 거고, 그게 꼭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 이런 거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드린다. 일주일에 두 번 전화가 내 한계면, 그게 내 최선이다. 명절마다 양가를 다 가는 게 힘들면,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부모님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려다가 지쳐서 발길이 끊기는 것보다, 내가 편하게 갈 수 있는 만큼 가는 게 오래 간다.
그리고 부모님의 감정과 내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엄마가 서운해하신다고 해서 내가 나쁜 딸인 건 아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신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건 아닐 수도 있다.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고, 그분들의 감정은 그분들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처음에는 불효처럼 느껴졌다. 근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선을 긋고 나니까 오히려 부모님께 더 잘하게 됐다. 억지로 하는 효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도가 되니까.
요즘 엄마와 통화할 때 예전보다 대화가 길어졌다.
옛날에는 "밥 먹었어?" "응" "건강해?" "응" 하고 5분 만에 끊었는데, 이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가 요즘 무릎이 아프시다는 것, 아버지가 요새 부쩍 낮잠을 많이 주무신다는 것. 나도 요즘 일이 어떤지, 뭐 먹었는지 이야기한다.
부담을 내려놓으니까 진짜 궁금해지더라. 그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40대 후반이 되면 부모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된다. 뵐 때마다 조금씩 작아지시는 것 같고, 조금씩 느려지시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잘해드려야 한다는 조급함도 생긴다.
근데 그 조급함으로 억지 효도를 하면 서로 지친다. 내가 편해야 부모님께도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해야 부모님도 그걸 느끼신다.
관리라는 단어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건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다.
오늘도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뭐해?" "아이고, 우리 딸, 웬일이야 낮에 전화하고."
그 목소리가 좋았다. 의무감이 아니라 진짜 듣고 싶어서 건 전화니까.
부모님과의 관계도 가꿔야 한다. 가꾼다는 건 무조건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맞는 거리와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게 40대 후반에 배운 또 하나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