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만나기 전날 밤부터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 뭐 입지?가 아니라
내일 무슨 말을 조심해야 하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요즘 그 사람 기분은 어떤지,
지난번에 내가 한 말 중에 혹시 걸리는 게 있었는지,
또 예민해져 있으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받아줘야 할지.
만나기도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 한 번, 마음에서 한 번 지쳐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관계는 늘 그랬다.
나는 내 감정을 접어두고, 그 사람의 컨디션에 맞춰 움직였다.
그 사람이 힘들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들어줬다.
그런데 내가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몇 마디 못 가 다시 그 사람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나는 웃었다.
속으로는 ‘아, 오늘도 이렇네’ 하면서도
얼굴로는 괜찮은 척했다.
왜 그랬을까.
오래 알아서.
공통 지인이 많아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어서.
이유는 많았고, 핑계는 언제나 충분했다.
마흔이 되면 관계 정리가 쉬워질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뭐든 담담해진다더니,
필요 없는 관계쯤은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드라마처럼
“우리 이제 여기까지야”
한마디 하고 돌아서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정리는 생각보다 어렵고,
사람 마음은 칼처럼 자르듯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끊는 게 아니라, 멀어지는 것.
연락이 오면 답장을 조금 늦게 하고,
만나자는 말에는 “요즘 좀 바빠서”를 붙이고,
단톡방에서는 굳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어쩌면 비겁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빠져나오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는 안다.
마흔의 관계 정리는
결단이 아니라 조절에 가깝다는 걸.
한 번에 끝내는 게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불완전하게 멀어지는 거라는 걸.
가끔 그 사람이 떠오른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때는 정말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건
그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다.
만나고 나면 며칠을 무기력하게 보내야 했던 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내 감정은 어디엔가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나를
더는 방치하고 싶지 않다.
독이 되는 사람과 이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거창한 선언도, 멋진 마무리 멘트도 없다.
그냥 조금씩 거리를 벌리는 것.
찝찝함을 안고 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끊어내지 못해도 괜찮다.
나를 지키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제는
그 정도의 불완전함쯤은
나 스스로에게 허락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