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나는 대화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모임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재치 있는 말로 웃음을 이끌어내고, 내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40대 중반 어느 날, 오랜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너는 항상 할 말이 많아서 좋겠다."
칭찬인 줄 알았는데, 그 친구의 표정이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저녁 내내 내가 얼마나 떠들었는지. 친구가 무슨 얘기를 꺼내려 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말을 가로챘는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듣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내가 뭐라고 말하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공감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도 그런 적 있어, 그때 내가..."하며 내 이야기로 넘어가기 일쑤였고. 상대방의 고민에 "그건 이렇게 하면 돼"라고 해결책을 내놓는 게 도움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건 경청이 아니라 '듣는 척하면서 내 차례 기다리기'였을 뿐이다.
변화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야, 그 정도는 괜찮아.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시작했을 텐데, 그날따라 컨디션이 별로여서 그냥 듣기만 했다. 고개만 끄덕이고,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만 반복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후배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언니, 오늘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들어준 사람 처음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조언도, 해결책도, 위로의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냥 들었을 뿐인데. 그런데 후배는 그게 가장 필요했던 거였다.
그 후로 경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원한다. 그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찾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내가 도와줄게"라며 나서버린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늘어놓으면서.
4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진짜 대화 잘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경청은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는 걸.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연습한다. 상대방이 말할 때 다음에 내가 할 말을 생각하지 않기. "나도"라는 말 대신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더 물어보기.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먼저 마음을 알아주기.
쉽지 않다. 수십 년간 굳어진 습관은 정말 안 고쳐진다. 여전히 말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가 많고, 무심코 상대방 말을 끊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신기한 건, 말을 줄이니까 오히려 관계가 깊어졌다는 거다. 예전엔 모임 후에 "오늘 내가 좀 많이 떠들었나?"하는 찜찜함이 있었는데, 요즘은 집에 돌아오는 길이 따뜻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는 뿌듯함.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작은 기쁨.
40대 후반, 나는 드디어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고요한 귀 기울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여본 적이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