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
동생은 지적장애가 있다.
이 문장을 쓰는 데 거의 오십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아니, 쓸 수는 있었다. 다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에 쓰는 건 처음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부끄러워서? 아니다. 부끄럽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그럼 뭘까.
아마도, 이 한 문장 뒤에 따라붙는 수많은 감정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두 살 차이다. 그래서 동생이 태어난 순간의 기억은 없다. 내 기억 속에 동생은 그냥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쟤는 좀 늦어."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돌이 지나도 걷지 못하고, 두 돌이 지나도 말을 못 할 때. "늦되는 애들도 있어. 기다려보자."
기다림은 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다림은 '인정'으로 바뀌어야 했다.
동생이 특수학교에 간 날을 기억한다. 나는 동네 초등학교, 동생은 멀리 있는 특수학교. 아침마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리를 보며 동네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냥 "누나"가 아니라 "장애인의 누나"가 됐다.
고백하자면, 나는 동생을 원망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동생을 보여주기 싫었다. 설명하기 싫었다. "쟤 왜 저래?"라는 질문을 듣기 싫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두 살밖에 차이 안 나는 동생. 같이 뛰어놀았어야 할 동생. 내 고민을 나눴어야 할 동생.
하지만 우리 사이엔 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나는 동생의 누나였지만, 동생은 내 동생이 아닌 것 같았다. 또래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비밀을 나누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집에서는 늘 동생이 중심이었다. 엄마 아빠의 관심, 에너지, 시간. 당연히 동생에게 더 갔다. 그래야 했다. 나도 안다.
그런데 가끔, 억울했다. '나도 힘든데. 나도 봐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는 바로 죄책감이 밀려왔다.
동생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이런 감정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빠가 얼마나 막막했을지.
내 아이가 아플 때, 밤새 잠 못 이루는 마음.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 친구들한테 상처받진 않는지 노심초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평생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엄마 아빠는 그걸 사십 년 넘게 해온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과 에너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동생한테 이만큼 쏟으면서, 나한테도 쏟으려고 애썼겠구나.' '그게 얼마나 버거웠을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이 조금 이해됐다.
가끔 친척들이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누나가 있으니까 다행이야." "나중에 누나가 돌봐야지."
웃으면서 넘기지만, 그 말이 무겁다.
나는 동생의 누나다. 동생의 엄마가 아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내 가정이 있다. 남편이 있고, 내 일이 있고, 내 삶이 있다.
동생을 사랑하지만, 내 전부를 바칠 수는 없다. 이렇게 쓰면 냉정해 보일까.
하지만 이걸 인정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죄책감에 짓눌려서 나를 갈아 넣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내가 무너지면 아무도 돌볼 수 없다는 걸.
지금 나는 이렇게 한다.
부모님 댁에 한 달에 두어 번 간다. 동생 데리고 밥 먹고, 산책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복지관 서류나 필요한 건 내가 챙긴다. 엄마 아빠가 쉴 수 있도록 가끔 동생을 우리 집으로 데려온다. 아이들은 삼촌이랑 노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내 가정을 돌보고, 내 일을 한다.
예전에는 이게 죄책감이었다. '이 정도밖에 못 하면서 무슨 누나야.'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 어떡해.'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정도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동생에게 많이 배웠다.
동생은 거짓말을 못 한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한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 화났던 일을 오늘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내가 늦은 나이에 애쓰며 배우는 것들을 동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누나, 밥." 동생이 나를 부르는 건 늘 단순하다. 밥 먹자, 같이 가자, 이거 봐.
내 아이들도 삼촌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삼촌은 맨날 웃어." "삼촌은 안 혼내."
복잡한 세상에서 동생의 단순함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도 그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 고맙다.
장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적절한 거리"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너무 가까우면 내가 무너진다. 너무 멀면 죄책감에 무너진다. 그 사이 어딘가, 아슬아슬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지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부모님 건강 상태에 따라, 동생 컨디션에 따라, 내 아이들 상황에 따라, 내 체력에 따라 계속 움직인다.
완벽한 균형 같은 건 없다. 그냥 매 순간 최선의 거리를 찾을 뿐이다.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물었다. "엄마, 삼촌은 왜 말을 잘 못 해?"
심호흡을 했다. 이 질문이 올 줄 알았다.
"삼촌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랑 조금 다르게 태어났어. 말하는 것도 느리고, 배우는 것도 느려. 그런데 그게 삼촌 잘못은 아니야. 그냥 사람은 다 다르게 태어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삼촌이 맨날 웃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서 되물었다. "응. 다른 어른들은 맨날 걱정하는데, 삼촌은 맨날 웃잖아."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단순하게, 그래서 더 정확하게 본다.
부모님은 연로해지신다. 아버지는 예전 같지 않고, 엄마도 체력이 떨어지셨다. "우리 없으면 얘를 어떡하냐"라는 말을 가끔 하신다.
그 말이 무겁다.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걱정 마세요. 방법을 찾을 거예요. 혼자 다 짊어지진 않을 거예요."
나는 아직도 이 관계를 완전히 모르겠다. 동생에게 얼마나 해줘야 충분한 건지. 내 가정과 원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답을 모른 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리고 아마 예순이 되어도, 일흔이 되어도 모를 것 같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답을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복잡한 감정을 안은 채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완벽한 누나, 완벽한 딸,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그냥 '나'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도 아마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장애 가족일 수도 있고, 아픈 부모님일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든 "나만 이런가" 싶은 짐을 지고 있을 것이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전부 괜찮다고. 지치는 것도, 도망치고 싶은 것도, 가끔 원망하는 것도.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것. 그게 인간이라고.
선을 긋는다는 건 사랑을 멈추는 게 아니다. 사랑하면서도 나를 지키는 것이다. 오래 사랑하기 위해 잠시 물러나는 것이다.
늦은 40대의 나는 오늘도 그 선 위에 서 있다. 두 아이 손잡고, 동생 챙기고, 부모님 살피면서. 흔들리면서,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면서.
그게 내가 발견한 삶의 법칙이다.
가족이라서 더 어렵고,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가족이라서 끝내 놓지 못한다.
그 모든 모순 안에서 나는 오늘도 누나로, 엄마로, 딸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