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다.
이 말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 좋아하잖아", "넌 사교적이잖아"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맞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거다. 모임에 가면 웃고, 대화하고, 분위기 맞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먼저 말을 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탈진한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계속 되짚는다. '그때 그 말은 괜찮았을까.' '저 사람 기분 나빴으면 어떡하지.'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운 게 아니다. 버티는 거다.
왜 이렇게 됐는지,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동생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건 전에 썼다. 두 살 차이 남동생. 내 기억 속에 동생은 늘 거기 있었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네가 잘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넌 누나니까."
어릴 때는 그 말의 무게를 정확히 몰랐다. 그냥 잘해야 하는 거구나, 했다. 엄마가 힘들어하시는 건 느꼈으니까. 내가 말 잘 듣고, 문제 안 일으키면 엄마가 조금 편해지겠구나.
그래서 착한 아이가 됐다. 시키는 것 잘하고, 눈치 빠르고, 분위기 맞추는 아이.
그때는 몰랐다. 그게 평생 가는 거라는 걸.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지금도. 새로운 사람 앞에 서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켜진다.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깨가 올라가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웃음이 많아진다. 내가 보기에도 과하다 싶은데, 멈출 수가 없다.
그러고 나면 녹초가 된다.
남들은 그냥 만나고, 밥 먹고, 헤어지는 거잖아. 나한테는 그 하나하나가 전투다. 무장하고, 싸우고, 돌아와서 쓰러지는.
그래서 새로운 만남이 무섭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무섭다.
NO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것도 여기서 왔다.
거절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 사람이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무리한 부탁도 들어줬다. 하기 싫은 모임도 갔다. 원하지 않는 관계도 유지했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야 문제가 안 생기니까.'
어릴 때 엄마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넌 누나니까." "네가 참아야지."
그 말이 "넌 네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생각해야 해"로 번역돼서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렇게 쓰면 엄마 탓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셨다. 장애가 있는 아들, 어린 딸, 생계.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거다.
"네가 잘해야 해"라는 말은 "너한테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혼자 잘해줘"라는 절박함이었을 거다. 나쁜 뜻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아는 것과 느끼는 건 다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에 새겨진 긴장은 쉽게 안 풀린다. "잘해야 해"가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버렸다. 사십 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왜 "열린 마음"을 얘기하냐고?
닫고 살면 편하다. 진짜로. 새 사람 안 만나고, 기존 관계만 유지하고. 에너지 쓸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다.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외로웠다.
오래된 관계는 편하지만, 갇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 새로운 내가 들어갈 틈이 없다. "넌 원래 그렇잖아"라는 말에 갇혀서 변하고 싶어도 못 변하는 기분.
새로운 사람은 나를 모른다. 과거의 나, 동생 있는 집안의 누나, 늘 잘해야 했던 나를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의 나"로 만날 수 있다.
그게 무섭기도 하지만, 해방감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나는 연습 중이다.
새 사람을 만나도 "잘하려고" 하지 않는 연습. 대화가 좀 어색해도 그냥 두는 연습. 상대방 반응을 내가 책임지지 않는 연습.
쉽지 않다. 사십 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이니까.
그래도 가끔 성공한다. "오늘 좀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그 한마디 하는 데 심장이 뛰었지만, 해냈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대신 '나 오늘 나를 지켰다'라고.
작은 거다. 하지만 나한테는 큰 거다.
내가 생각하는 "열린 마음"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 만나는 것.
잘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 전전긍긍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앉아 있는 것.
솔직히 아직 잘 못 한다. 그런데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해"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로 바꾼 것만으로도 좀 편해졌다.
또 하나의 "잘해야 해"가 되지 않도록.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이 가르쳐준 것도 있다.
동생은 사람을 만나도 긴장 안 한다.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좋으면 좋다고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쟤는 왜 눈치가 없을까.'
지금은 다르게 본다. 동생이야말로 진짜 "열린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내가 쉰 가까이 살면서 배우려는 걸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여전히 새로운 만남은 떨린다. 사람 앞에 서면 여전히 긴장한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어린 시절, 어쩔 수 없이 익힌 생존 방식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도 된다는 걸.
쉰을 바라보는 나이.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겠냐 싶지만, 그래도 조금씩 연습한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한테 말해주는 연습.
어릴 때는 엄마의 말대로 살았다. "잘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쉰을 앞둔 지금, 나는 다른 말을 연습한다.
"잘 못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돼." "넌 그냥 너면 돼."
평생 못 들은 말을, 이제는 내가 나한테 해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