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인 거

by 코난의 서재

솔직히 말하면, 나는 혼자가 무서웠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영화 보는 것.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것.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였다. '저 사람 친구 없나 봐.' '외로워 보인다.' 그런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을 잡았다.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아도. 혼자 있기 싫어서 만났다.


20대, 30대는 그랬다

그때는 늘 사람 속에 있었다.

대학 때는 과 동기들과 매일 붙어 다녔다. 혼자 학식 먹으면 왠지 창피했다. 도서관도 같이 가고, 공강도 같이 보냈다.

직장 다닐 때는 점심 약속이 곧 생존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외톨이 취급받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 엄마들 모임, 부부 동반 모임, 가족 모임. 주말마다 누군가를 만났다.

바빴다. 정신없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첫 번째 혼밥

마흔다섯 되던 해. 큰애는 중학생, 작은애는 초등학생.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아이들은 학교.

점심때가 됐는데 집에 먹을 게 없었다.

평소 같으면 친구한테 연락했을 거다. '점심 먹을래?' 카톡 보내고, 어딘가에서 만났겠지.

근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연락하고, 장소 정하고, 이동하고. 그 과정이 귀찮았다.

그냥 나갔다. 동네 국숫집. 혼자 들어가서 잔치국수 시켰다.

처음엔 어색했다.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근데 국수가 나오고, 한 젓가락 먹고, 창밖을 보는데.

'어, 괜찮은데?'

아무도 나를 안 봤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점심시간에 밥 먹는 사람이었다.

그 당연한 걸 마흔다섯에 깨달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연습했다

그 뒤로 조금씩 연습했다.

혼자 카페 가기. 처음엔 15분도 못 앉아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폈다 덮었다 했다.

근데 몇 번 하다 보니까 익숙해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어도 괜찮더라. 커피 마시면서 멍때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더라.

혼자 영화 보기. 이건 좀 더 용기가 필요했다. '저 아줌마 친구 없나 봐' 소리 들을 것 같아서.

근데 막상 가보니까 혼자 온 사람 꽤 있었다. 팝콘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다 먹었다. 끝나고 바로 집에 가도 됐다.

이게 이렇게 편한 거였어?


비워야 들리는 것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못 듣던 것들. 그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 지금 뭐 하고 싶지?' '오늘 기분이 왜 이렇지?' '요즘 뭐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거지?'

예전엔 누군가와 있으면서 내 기분을 몰랐다.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상대방 반응 살피고, 대화 이어가고, 분위기 맞추느라.

혼자 있으니까 비로소 내가 들렸다.

아, 나 지금 피곤하구나. 아, 이게 나를 불편하게 했구나. 아, 나 이거 하고 싶었구나.

그 목소리를 40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 들었다.


죄책감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죄책감이었던 적도 있다.

남편과 아이들 두고 나만 카페 가는 것. 집안일 놔두고 혼자 영화 보는 것. 가족들 저녁 안 챙기고 친구 만나는 것.

'내가 이래도 되나.' '나만 편하자고.'

엄마는 자기 시간이 없어야 한다고 배웠다. 좋은 아내는 남편 옆에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닌데 어느새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근데 생각해봤다. 지친 엄마가 가족한테 뭘 줄 수 있을까. 텅 빈 컵으로 뭘 따라줄 수 있을까.

내가 채워져야 줄 수 있다. 내가 쉬어야 웃을 수 있다.

그게 이기심이 아니더라.

동생, 그리고 혼자의 시간

동생은 늘 거기 있다.

명절이면 모인다. 부모님 댁에서. 나는 음식 준비하고, 아이들 챙기고, 동생도 살핀다. 남편은 애쓰는데 역시 내 몫이 크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집에 오면 탈진한다. 몸도 마음도.

예전엔 그게 당연했다. '가족이니까.' '내가 해야지.'

근데 요즘은 안다. 그다음 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커피 마시기. 아무 말 안 하고 소파에 누워 있기. 그 시간이 있어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동생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가족이 귀찮아서가 아니다. 그냥, 나도 숨을 쉬어야 하니까.


이 나이에 깨달은 것

쉰을 바라보는 나이. 늦게 배웠다.

혼자 있는 건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것.

누군가와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충만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옆에 사람이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와 편하게 있을 수 있느냐더라.


요즘의 나

요즘 나는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든다.

일주일에 한 번. 카페에 가거나, 동네 산책을 하거나. 아무 약속 없이 그냥 혼자.

대단한 건 아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창밖 보는 것. 이어폰 끼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걷는 것.

근데 그게 나를 살린다.

복잡한 것들이 정리된다. 까칠해진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아직도 가끔 혼자 있는 게 어색하다. 습관이 쉽게 안 바뀌더라. '지금 뭐 해야 하지?'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말한다. 나한테.

'

괜찮아. 그냥 있어도 돼.'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너랑 같이 있는 거야, 지금.'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 아니, 혼자여야 괜찮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 마흔 후반에 배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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