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크게 싸우고 내일이 두려운 엄마

by 코난의 서재

딸이 대학생이 됐다.

입학 통보를 받던 날, 나는 안방에서 혼자 울었다.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 수능 끝나고 차에 타자마자 울던 아이. 그 긴 터널을 함께 지나서 여기까지 왔다.


그때 나는 믿고 있었다. 제일 힘든 건 끝났다고. 이제 좀 편해지겠지, 라고.

카톡이 줄었다.

"엄마 오늘 뭐 해?" "엄마 이거 봐 ㅋㅋ" 하루에도 몇 번씩 오던 메시지가 사라졌다.

전화하면 "어 왜?" 한마디. "밥 먹었어?" "응." 3분도 안 돼서 끊긴다.

서운하다. 솔직히 서운하다. 근데 다 큰 애한테 서운하다고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 삼킨다. 늘 그래왔듯이.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힘들어 죽겠어." 전화기 너머 지친 목소리.

"그럼 그만둬. 무리하지 말고."

이게 답인 줄 알았다.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엄마는 진짜 내 맘을 모르겠다."

뚝. 전화가 끊겼다.

뭘 잘못한 건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나 요즘 좀 우울한 것 같아."

숨이 멎었다.

"우울증인 것 같아."

머릿속에서 백 가지가 동시에 돌아갔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안아줘야 하나. 병원을 찾아야 하나.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입에서 나온 말.

"괜찮아, 다 그런 시기가 있어."

말하고 나서 눈을 감았다. 아, 또 틀렸다. 지금 아프다는 사람한테 '다 그런 시기'라니.

근데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싸움이 잦아졌다.

"엄마는 맨날 그런 식이야." "세상이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나도 참다 참다 터진다. "너만 힘든 줄 알아?"

그러면 딸의 눈이 차갑게 식는다. 문이 닫힌다. 쾅.

후회가 밀려온다. 미안해, 하려는데 그 말이 안 나온다. 며칠 지나면 또 말을 섞는다. 별것 아닌 이야기로. 조심조심.

그러다 또 터진다. 또 상처 주고. 또 후회하고.

빈번하다.

무섭다.


오늘도 싸웠다.

알바 가는 길. 차에 태워다주면서.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잘 기억 안 난다. 뭔가 한마디가 한마디를 불렀고, 그 한마디가 고름처럼 터졌다.

쌓이고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도 쏟아냈고, 딸도 쏟아냈다. 좁은 차 안에서. 핸들 잡은 손이 떨렸다.

딸이 내렸다. 문을 세게 닫았다. 뒷모습을 보는데 흐려졌다. 앞이.

운전하면서 울었다. 집에 와서도 울었다. 지금도 이걸 쓰면서 울고 있을지 모른다.

뭐가 무서운 건지 나도 모르겠다.

이 아이가 나를 점점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운 건지. 이 아이의 아픔을 내가 어떻게도 못 해준다는 게 무서운 건지. 우리가 이대로 영영 멀어질까 봐 무서운 건지.

내일 아침이 무섭다. 이 아이 얼굴을 어떻게 보지. 또 싸우면 어떡하지. 또 틀린 말을 하면 어떡하지.


그냥. 전부 다 무섭다.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딸 어릴 때 사진을 봤다.

다섯 살. 유치원 가방 메고 현관에서 찍은 사진. 이빨 빠진 채로 웃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 교문 앞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서 있다. "엄마, 같이 가면 안 돼?"

"엄마 여기 있을게. 걱정 마."

그때 나는 이 아이의 전부였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무조건 내 편인 사람.

그 아이가 오늘 차 문을 세게 닫고 내렸다. 뒤도 안 돌아봤다.


근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 아이는 오래전부터 나를 봐주고 있었다.

명절에 지쳐서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 괜찮아?" 물었던 아이. 부모님 일로 한숨 쉬면 조용히 초콜릿을 가져다줬던 아이. 동생 챙기느라 녹초가 된 나한테 이불을 덮어줬던 아이.

자기도 아이였으면서. 자기도 엄마가 필요했을 텐데.

이 아이는 꽤 오래,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자기 감정을 접어두고. 엄마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내가 동생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잘해야 해" "문제 일으키면 안 돼" 그 말 한 적 없는데. 이 아이는 그걸 스스로 짊어졌다.


그걸 이제야 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야.

그러니까 지금 이 아이가 짜증 내고, 화 내고, 울고, 밀어내는 거.

그게 어쩌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거다. 더 이상 착한 딸 안 하겠다는 거다. 엄마 앞에서만큼은 솔직해도 된다고 느끼니까.

나한테만 그러는 거다. 바깥에서는 안 그런다. 나니까 그러는 거다.

그걸 알면 좀 나아야 하는데. 알아도 아프다. 알아도 화가 난다. 알면서도 오늘 차 안에서 같이 소리 질렀다.


미안하다.

짜증 낼 때 같이 짜증 내서. 화낼 때 받아주지 못해서. 우울하다는데 엉뚱한 말밖에 못 해서. 네가 나를 봐주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내가.

미안하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 아이만큼은 상처 안 주고 키우고 싶었다. 내가 어릴 때 못 받은 것들을 다 주고 싶었다.

근데 안 됐다.

나도 상처받고, 서운하고, 화나고, 두렵고, 어쩔 줄 모른다. 딸의 아픔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한심하다. 옆에 있어줄 수도, 대화할 수도, 안아줄 수도 없는 엄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만큼밖에 안 된다.

그걸 인정하는 게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곧 기숙사에 들어간다.

짐을 싸줘야 하는데 손이 안 움직인다.

매일 싸우는 아이인데. 카톡도 안 하는 아이인데. 내 말이면 한숨부터 쉬는 아이인데.

같은 집에 있으면 기척이라도 느끼니까.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있구나' 하고 안심이 되니까. 새벽에 화장실 가는 발소리가 들리면 괜찮으니까.

그마저도 없어지면.


오늘도 엄청 싸웠다. 그래서 내일이 두렵다.

내일 아침 이 아이를 어떤 얼굴로 보지. 또 틀린 말을 할까 봐. 또 상처 줄까 봐.

근데.

내일 아침이 오면 나는 또 일어날 거다.

부엌에 서서 뭔가를 만들고 있을 거다. 대단한 건 아니고, 밥이든 라면이든. 이 아이가 안 먹더라도. 안 나오더라도.

만들어놓을 거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엄마니까.


미안해서, 화가 나서,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날에도.

밥은 할 수 있으니까.


완벽한 엄마는 없었다.

오늘 크게 싸우고 내일이 두려운 엄마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내일 아침 이 엄마는 부엌에 서 있을 거다.

차마 미안하다는 말 대신 밥을 차려놓을 거다.

그게 이 엄마의 서투르고 불완전한 사랑의 전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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