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고쿠가 죽덤 밤, 잠을 못잤다

by 코난의 서재

2021년 1월의 어느 밤이었다.


극장에서 돌아온 시각은 밤 열한 시. 메가박스를 나서면서도 멍했다. 집에 도착해 씻고 누웠지만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천장만 바라봤다.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재생됐다. 황금빛 머리카락. 불꽃 같은 눈동자. 마지막까지 칼을 놓지 않던 그 손.


렌고쿠 쿄주로가 죽었다.

마흔넷 먹은 내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죽음에 밤잠을 설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 뭉클한 덩어리가 내려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얼어붙은 와중에 한국에서 218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를 나는 개봉 첫 주에 보러 갔다. TV 시리즈 26화를 정주행하고, 단행본도 모았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스크린에서 마주하니 전혀 다른 충격이었다.

상현 3 아카자의 주먹이 렌고쿠의 복부를 관통하는 순간, 극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마스크가 축축하게 젖었다.


렌고쿠는 귀살대의 '주(柱)' 중 하나인 염주(炎柱)다. 스물 살. 내 큰아이보다도 어린 나이. 무한열차에 탑승한 200명의 승객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탄지로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한쪽 눈이 멀고, 내장이 터져 나오는 치명상을 입고서도.

"마음을 불태워라(心を燃やせ)."

아카자가 복부를 꿰뚫은 순간에도 렌고쿠는 칼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온 힘을 다해 아카자의 목을 베려 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혈귀인 아카자는 햇빛에 소멸할 터였다. 렌고쿠는 그걸 알았다. 자신이 죽더라도 적을 함께 끌고 가려 했다.

결국 아카자는 스스로 팔을 잘라 도망쳤다. 렌고쿠는 홀로 남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꼿꼿이 앉아, 달려오는 탄지로에게 미소 지었다.

"카마도 소년, 멧돼지 소년, 노란 소년. 더욱 성장해라. 다음에는 너희들이 귀살대를 지탱하는 주가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너희들을."

그리고 어머니의 환영을 보며 물었다. "저는 할 일을 다 이루었을까요?" 환한 미소를 짓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향년 스물.


새벽 네 시, 결국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며 멍하니 창밖을 봤다. 서울 밤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왜 렌고쿠가 죽어야 해? 아카자 이 나쁜 놈. 작가님 왜 이래요 진짜.

마흔넷에 애니 캐릭터한테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코난을 보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어느새 나는 2차원 세계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한열차편 OST를 들었다. LiSA가 부른 '炎(불꽃)'이 흘러나올 때, 또 눈물이 났다. 마스크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코로나 시대의 작은 위안.


저녁에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무한열차 다 봤어?"

아들이 답했다. "엄마 울었지? ㅋㅋㅋ"

딸이 렌고쿠 스티커를 보냈다. "렌고쿠상 최고…"

남편만 물음표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곧 가족 전체가 귀멸의 칼날 이야기로 밤새 수다를 떨었다. 아들은 탄지로의 성장 스토리가 좋다고 했고, 딸은 시노부의 독설에 반했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렌고쿠.


그날 이후 나는 렌고쿠 굿즈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피규어, 아크릴 스탠드, 열쇠고리, 포스터. 책상 한쪽에 작은 렌고쿠 사당이 생겼다. 남편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염주님. 나의 빛.

지금도 무한열차편을 다시 보면 운다. 몇 번을 봐도 운다. 그리고 볼 때마다 생각한다. 스물 살 청년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들. 자기보다 어린 후배들에게 남긴 믿음의 말.


애니메이션이 뭐길래 마흔 넘은 아줌마 마음을 이렇게 흔드나. 그 답을 나는 아직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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