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지금은 좀 바빠서”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정말로 바쁜 날도 많지만, 사실 그 말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신호에 더 가깝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은
“조금만 더 정리되면”이다.
생각이 정돈되면, 상황이 안정되면, 감정이 덜 흔들리면.
그 ‘조금만’은 언제나 다음 주, 다음 달, 혹은 다음 계절로 미뤄진다.
돌이켜보면 완벽한 준비가 끝난 적은 거의 없었는데도
나는 늘 그 조건을 기다려 왔다.
언제부터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여러 번의 시작이
기대만큼 흘러가지 않았던 시간들 이후였을 것이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던 순간,
용기를 냈지만 상처로 돌아왔던 경험들.
그 이후로 나는 시작 앞에서
나를 한 번 더 감싸는 말을 익혔던 것 같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라는 말은
사실 나를 게으르게 만들기보다는
너무 쉽게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방어였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실패했을 때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탓하지 않기 위해서.
그 핑계는 나를 멈추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말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으려 한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있지만,
지금의 나를 보살피려는 의도도 함께 들어 있으니까.
나는 시작을 미루는 사람이기보다,
시작 앞에서 스스로를 한 번 더 살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기록은 변명을 내려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출발선에 서는 사람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메모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게 될 때,
그 핑계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말을 알아본 뒤에 한 발을 내딛게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