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온도

by 코난의 서재

참 이상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시작'이라는 말 앞에서는 매번 첫출근 하는 신입사원처럼 마음이 서성인다. 이제는 좀 무뎌질 법도 한데, 첫 발을 떼기 전의 그 서늘한 기분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떤 날은 지독하게 혼자이고 싶다. 누가 옆에서 말이라도 걸면 애써 붙잡아둔 생각의 실타래가 툭 끊어질 것만 같아,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나만의 동굴로 기어 들어간다. 휴대폰은 뒤집어두고, 오로지 흰 종이와 나만 남겨진 시간. 펜촉이 종이를 사각사각 긁는 소리만 들리는 그 적막이 찾아오면, 그제야 내 안의 에너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내 속도대로 생각의 뼈대를 세워가는 그 희열. 그때의 나는 외롭다기보다, 차라리 뜨겁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그 똑같은 시작이 밑바닥부터 겁이 난다. "이게 정말 될까?" "나 혼자 헛다리 짚는 거 아니야?" 하는 의구심이 한 번 고개를 들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럴 땐 비겁하게도 자꾸만 밖을 기웃거린다. 누군가의 손을 더듬더듬 찾고 싶어진다.

마음 맞는 동료를 불러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나 이런 거 해보고 싶은데..."라고 툭 내뱉고 나면, 신기하게도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빠진다. "그거 재밌겠는데요?"라는 별거 아닌 한마디에, 혼자 짊어졌던 시작의 무게가 반토막이 난다. 함께라는 온기는, 겁쟁이 같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다정한 채찍질이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매번 이 두 마음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때로는 고독하게 몰입하며 나를 벼리고, 때로는 타인의 어깨에 기대어 두려움을 건넜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 내가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찾아냈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뭔가를 새로 해보려고 꼼지락거린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차가운 정적인지, 아니면 따뜻한 북적임인지.

그저 오늘 나에게 어울리는 '시작의 온도'를 가만히 체크해 본다. 자, 오늘은 혼자 가볼까, 아니면 같이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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