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꺼진 자리

by 코난의 서재

남들의 입에선 '결과'가 단 구슬처럼 굴러 나오고, 앞사람은 벌써 '다음'이라는 계단을 경쾌하게 딛고 있었다.


그 활기찬 소음들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설명할 단어 하나조차 찾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뇌가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항복 선언을 했다.


갑자기 무릎 아래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공기가 폐까지 닿지 않고 명치 끝에서 흩어졌다. "나만 멈췄구나." 이 잔인한 문장이 머릿속에 들러붙자마자, 내 몸은 기다렸다는 듯 노골적으로 툭, 꺾였다.


비참함은 관념이 아니라 물리적인 통증이었다. 어깨는 자석에 이끌리듯 바닥으로 처졌고, 늘 나를 지탱해주던 발바닥은 지면을 놓치고 허공을 부유했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다. 방향을 잃은 채로 남의 보폭을 흉내 내며 억지로 전력 질주를 하다가, 마침내 회로가 타버린 것이었다. 엔진에 불이 붙었는데도 멈추는 법을 몰라 계속 엑셀을 밟아대던 미련함의 대가였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섣불리 다시 뛸 준비를 하지 않는다. 몸이 멈추라고 명령했던 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내 무너진 그림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벌써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지고, 사위는 적막하다. 하지만 이 적막 속에서만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있다. 타버린 내 엔진이 식어가는 소리, 그리고 이제야 시작된 나의 진짜 숨소리.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뒤처졌다는 공포보다, 이제야 내 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안도감이 더 서늘하게 나를 감싸 안는다.

작가의 이전글시작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