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온다고 해서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올해는 이상하게 준비해야 할 것보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먼저다.
항암치료를 받는 아빠,
그 곁을 지키느라 자기 몸은 자꾸 뒤로 미루고 장애인동생까지 케어하는 엄마.
엄마가 더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묘하게 조용해진다.
걱정을 크게 꺼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에 계속 서 있는 느낌이다.
딸은 대학에 간다. 기숙사로 떠날 준비를 한다.
축하해야 하는 시간인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조금 멀어진 것 같다.
제작년부터 집안의 일들이 급격히 겹치면서
서로를 챙기기보다 각자 버티는 쪽에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이번 설에 얼굴을 보면, 예전처럼 아무 일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런 마음이 든다.
아들은 여전히 애교를 부린다.
괜히 한 번 더 말을 걸고,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집 안의 끊어진 실을 이어주는 사람처럼 군다.
그 모습이 고맙고, 또 미안하다.
가끔은 나만 계속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쓰고 또 애쓰는데도,
나만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진 채 서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은 새 출발을 하는데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 작아진다.
세뱃돈을 챙겨줄 넉넉한 어른도 없고,
명절답게 웃어줄 여유도 부족한 채
그냥 하루하루를 급하게 건너는 중이다.
그래도 또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해보자고, 괜찮다고, 여기서 멈추지는 말자고.
그 다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지만
또 몇 번이고 다시 꺼내는 걸 보면
완전히 놓아버린 건 아닌가 보다.
이번 설은 특별하지 않아도 좋겠다.
많이 웃지 못해도, 서먹한 시간이 조금 있어도,
그저 한자리에 잠깐 같이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이 마음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