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앞에 세워 둔 자격증

by 코난의 서재

시작을 어렵게 만드는 나의 고정관념은 늘 같다.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조금 더 정리가 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때—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믿음이다.

이 생각은 참 단정하다. 시작을 허락하는 문 앞에 자격증 하나를 세워 둔다. 충분함, 완성도, 안정감. 세 가지 도장이 찍혀야 문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 문은 언제나 반쯤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 잠겨 있다. 왜냐하면 ‘충분함’은 내가 정한 기준에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기준이 되었을까. 돌아보면, 잘해냈던 경험보다 잘못되었을 때의 기억이 더 또렷해진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한 번의 실패가 ‘조심’이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그 조심은 곧 ‘준비’가 되었다. 준비는 미덕이 되었고, 미덕은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시작보다 점검에 능숙해졌다.

이 생각은 특히 시작선이 눈에 잘 보일 때 강해진다. 새로운 글의 첫 문장 앞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기 직전에서, 이름을 내걸어야 하는 순간에서. 그때마다 마음속 목소리는 친절하다. “조금만 더 다듬고 가자.” “지금도 괜찮지만, 더 나아질 수 있잖아.”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고정관념을 고치려 하지는 않는다. 반박도 하지 않는다. 다만 옆에 두고 바라본다. 그러면 그 생각의 구조가 보인다. 이 믿음은 나를 게으르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게 지키려는 방식이라는 것을. 실패의 흔적을 최소화하려는, 나름의 안전장치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요즘 시작을 ‘결정’이 아니라 ‘시도’로 바꾸어 부른다. 결정을 내리려면 충분해야 하지만, 시도는 불충분해도 가능하다. 시작을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으로 낮추면, 자격증은 필요 없어지고 문은 손잡이만 있으면 열린다.

여전히 “아직은 아니다”라는 말은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듣고 지나간다. 이 생각이 나를 보호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보호복을 벗고 한 걸음만 내딛는다. 그 한 걸음은 늘 작고, 그래서 가능하다.

시작을 가로막아 온 고정관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앞을 막지 않고, 뒤에서 속도를 늦추는 정도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시작은 빠를 필요가 없고, 완벽할 이유도 없다. 다만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출발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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