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특별한 계획이 있던 날이 아니었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부러 혼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하루가 예상보다 일찍 비어버렸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됐다.
괜히 시간이 남은 사람처럼 집에 들어와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보통 이런 날이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거나 굳이 할 일 하나를 만들어냈을 텐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귀찮다기보다는 이상하게도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 모를 밥을 대충 차려 먹고 설거지는 싱크대에 그대로 두었다.
정리되지 않은 그릇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마음이 급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이래도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휴대폰은 옆에 있었지만 굳이 손이 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누군가의 소식을 확인하지 않아도
시간이 충분히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문득 알았다.
내가 늘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실은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는 .
괜찮은 사람처럼 말하고 문제없는 하루를 사는 것처럼 반응하고
쓸데없이 밝아지거나
괜히 이해심 많은 사람인 척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날의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반응하지 않아도 됐고
잘 지냈냐는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고르지 않아도 됐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하루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혼자 있다는 사실이 외로움으로 번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또렷하게 느꼈다.
사람이 없어서 허전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도 마음이 빠져나가지 않는 시간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날 내가 충만했던 이유는 혼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고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됐고 오늘 하루가 이래도 된다는 걸
스스로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안에 혼자 있었지만 마음이 텅 빈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그 시간을 떠올린다.
사람이 없어서 불안하지 않았던 날
혼자였지만 마음이 모자라지 않았던 날을.
그리고 조심스럽게 인정해 본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았어도 그날의 나는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