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십 가까이 살면서 "싫어요"를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 말할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가 전화로 "이번 주말에 와라" 하면 가야 했다. 바쁜데, 힘든데, 솔직히 가기 싫은데. "네, 갈게요"라고 했다.
회사 동료가 "이거 좀 부탁해도 될까요?" 하면 받아줘야 했다. 내 일도 산더미인데. "그럼요, 드릴게요"라고 했다.
오래된 친구가 "나 좀 들어줄 수 있어?" 하면 들어야 했다. 똑같은 얘기를 열 번째 하는 그 친구의. "어, 물론이지"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지쳐 쓰러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게 '좋은 사람'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거절하지 않는 것. 언제나 받아주는 것.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
근데 사실은 달랐다.
그냥 무서웠던 거다.
거절했을 때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봐. "저 사람 이기적이야"라는 소리 들을까봐.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결국 나는 남들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나를 계속 갈아 넣고 있었던 거다.
전환점이 된 건 별 것 아닌 순간이었다.
몇 년 전, 마흔 중반쯤.
지인이 본인 아이 과외 선생님 좀 소개해달라고 했다. 근데 그 전에도 부탁 하나 들어줬고, 그 전에도 하나 들어줬다. 슬슬 일방통행이라는 느낌이 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피곤했다. 몸도 마음도.
그냥 입에서 나와버렸다.
"미안한데, 나 요즘 너무 바빠서 좀 어렵겠다."
보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연락 끊기면 어떡하지.'
근데 그냥 "아, 알겠어. 괜찮아"라고 왔다.
끝이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평생 두려워했던 그 반응이 실제로는 별일도 아닐 때가 많다는 걸.
내 머릿속에서만 엄청난 사건이었던 거다.
상대는 그냥 다음 사람한테 물어보면 됐다. 근데 나는 그 '다음 사람'이 되는 것을 평생 피해왔다.
그 이후로 조금씩 연습했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작은 것부터.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총무 맡아달라는 거, 정중히 빠졌다. 모임 날짜가 불편한데 그냥 맞춰줬던 것, 한 번 조율을 제안해봤다. 친정 엄마 주말 방문, "다음 주는 어때요?"로 한 번 밀어봤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한 일이 생겼다.
내가 YES라고 할 때의 무게가 달라졌다. 전에는 마지못해 하는 YES였다면, 이제는 내가 진짜 괜찮을 때 하는 YES가 됐다.
그게 관계를 더 오래 가게 만들었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것.
NO를 못 하는 사람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된다.
말로는 YES 하면서 표정으로, 늦장으로, 대충함으로.
그게 더 관계를 망가뜨린다.
차라리 처음에 솔직하게 "이번엔 어렵다"고 하는 게 훨씬 깔끔하다.
지금도 여전히 NO가 쉽지는 않다.
특히 가족한테는. 특히 오래된 관계일수록.
근데 이제는 안다.
NO는 관계를 끊는 말이 아니다. 나를 지키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말이다.
내가 소진되지 않아야 옆에 있어줄 수 있다.
매번 YES 하다가 탈진해서 사라지는 것보다 가끔 NO 하면서 오래 곁에 있는 게 낫다.
아직도 가끔 문자 보내놓고 답장 기다리면서 두근거린다.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근데 그 두근거림을 이제는 다르게 읽는다.
내가 나를 지키고 있다는 신호.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배운 것치고는, 꽤 쓸만한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