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린 한마디 — 「面白い」

by 코난의 서재


소파에 반쯤 누운 채로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화면 안에선 한창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세이도 고교의 에이스 사와무라가 마운드에서 발을 구르고, 포수 자리에 쪼그려 앉은 미유키 카즈야가 글러브로 사인을 냈다. 나는 그 장면을 넋 놓고 보면서, 어느 순간 자막을 읽는 건지 화면을 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게 문제였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정주행하고, 《겁쟁이 페달》로 넘어가고, 틈틈이 《주술회전》을 끼워 넣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엔 《약사의 혼잣말》을 한 화씩 봤다. 일주일에 한 번 《행복한 결혼》으로 감성을 충전하고, 넷플릭스에서 《던전 메시》를 발견한 뒤로는 시청 목록이 또 한 줄 늘었다. 장르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주인공도 다른 이 애니메이션들이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전부 일본어라는 것.



그런데 나는 그 일본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공부를 안 한 게 아니었다. 오십음도를 외우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겨우 떼고,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짬짬이 외웠다. 학습법 코칭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공부 못 할 리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미유키의 목소리를 자막 없이 듣고 싶었기 때문인지, 그 경계가 내 안에서도 불분명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문제는 결과였다.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그런데 내 귀에 도달하는 건 그냥 소리였다. 의미 없이 연결된 음절들의 폭포수. 자막이 없으면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보청기가 고장 난 것처럼, 눈으로는 배우를 보면서 대사를 귀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상한 상태.



이 사람들이 뭔 말을 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거지.



자괴감이 슬며시 올라올 때마다, 나는 자막을 읽으며 화면을 감상하는 척으로 버텼다.



그날은 《다이아몬드 에이스》 2기를 보고 있었다.



세이도 고교가 나카지마 고교와 붙는 경기였다. 상대 투수가 꽤 까다로운 폼을 가진 선수였고, 경기 초반부터 세이도 타선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 긴장감 속에서 미유키 카즈야가 타석에 들어섰다.



사실 그 장면쯤 되면 나는 이미 자막보다 미유키 얼굴을 먼저 보고 있었다. 안경을 벗고 콘택트를 끼면 인상이 확 달라지는 그 남자. 타석에서 배트를 고쳐 쥐고, 상대 투수의 폼을 읽으며 실눈을 뜨는 순간에 특유의 표정이 나온다. 계산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그 표정.



투수가 공을 던졌다. 미유키가 배트를 스치듯 흘렸다. 파울.



그리고 그가 헬멧 챙을 올리며 나지막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面白い。」



세 글자였다.



오모시로이.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자막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알았다. 눈이 자막으로 향하기도 전에, 의미가 먼저 들어왔다.



재미있네.



0.1초쯤 됐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뇌가 뭔가를 처리했다. 단어장에서 외웠던 面白い가, 미유키의 목소리와 맞물리면서, 전기가 흐르듯 연결된 것이다. 나는 반쯤 눕혀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혼자 소리를 냈다. 거실에 아무도 없었다.



"지금 내가 알아들었어?"



자막을 확인했다. '재미있네.' 맞았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자막이 확인해준 것이었다. 나는 잠깐 화면을 멈춰놓고 그 상황을 다시 되짚었다. 미유키가 파울을 치고, 헬멧을 올리고, 「面白い」라고 했고, 나는 자막보다 먼저 그 뜻을 알았다.



별거 아닌 단어였다. 일본어 입문 교재 초반부에 나오는 형용사였다. 단어장을 꽤 오래 들여다봤으니 아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지.



그 이후로 나는 화면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자막을 읽되, 귀를 미리 보내놓는 것. 소리를 먼저 낚아채려고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자막보다 귀가 먼저 닿는 순간을 발견하면 혼자 소리 없이 주먹을 쥐는 것.



《겁쟁이 페달》에서 아라카키 진파치가 "うるさい!(시끄러워!)"를 외칠 때, 나는 자막보다 0.5초 일찍 알아들었다. 《주술회전》에서 고조 사토루가 "最高だろ?(최고잖아?)"를 느긋하게 내뱉을 때도. 《약사의 혼잣말》에서 마오마오가 혼자 중얼거리는 약재 이름들 사이에서, 「苦い(쓰다)」라는 단어를 콕 집어낸 날엔 소파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알아듣는 단어의 숫자는 여전히 턱없이 적었다. 한 화를 보면서 내가 자막 없이 이해하는 말은 전체의 오 퍼센트도 안 됐다. 그런데 그 오 퍼센트가, 백 퍼센트를 알아듣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었다.



마흔이 넘어서 다시 받아보는 점수. 거의 평생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처음으로 글자를 읽었을 때가 이랬을까. 수영장에서 두 발이 처음으로 바닥을 떠났을 때가 이랬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이 세계를 처음으로 '알아가던' 그 순간의 감각이.



「面白い。」



재미있네.



미유키가 먼저 가르쳐 주었다. 이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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