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가나를 다 외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잠깐 착각했다. 이제 좀 들리겠구나, 하고.
착각은 보통 오래가지 않는다.
자막을 끄고 틀었던 첫 화면, 등장인물들이 무언가를 신나게 지껄이는데 귀에 들어오는 건 여전히 소음이었다. 분명 히라가나 오십 개를 외웠고, 五十音図 앞에서 수십 번 눈물도 흘렸는데. 그 음절들이 실제 말 속에 섞이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본어는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다. 말도 마찬가지다. 단어들이 강처럼 흘러가버린다.
그래도 나는 자막을 껐다.
어차피 학원도 아니고, 선생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 남은 건 애니뿐이었다. 하루에 두 편, 세 편.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고, 틀어놓고 밥을 먹고, 틀어놓고 잠이 들었다. 일본어 100일 듣기의 시작은 사실 그렇게 무모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보다가, 미유키 카즈야가 포수 자리에서 마운드를 향해 소리치는 장면에서였다.
「面白い——!」
재미있다. 흥미롭다.
그 단어가, 처음으로 자막 없이 들렸다.
귀에서 뇌까지 도달하는 데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유키 특유의 비뚤어진 웃음과 함께 튀어나온 그 한 마디가, 번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의미로 변환됐다. 나는 리모컨을 든 채 그 자리에서 멈췄다. 내가 방금 들은 거 맞지? 혼자 확인하듯 중얼거렸다. 면시로이—. 면시로이—. 같은 발음을 입안에서 굴렸다. 맞았다. 내가 들은 게 맞았다.
그날 이후로 미유키는 단순한 최애 캐릭터가 아니라, 나의 첫 번째 일본어 선생님이 됐다.
생각해보면 애니는 최고의 언어 교재였다.
교과서처럼 지루하지 않고, 학원처럼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선생님처럼 틀렸다고 혼내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열 번 돌려봐도 캐릭터들은 절대 짜증내지 않는다. 오히려 매번 같은 열정으로 같은 대사를 쳐준다.
〈약사의 혼잣말〉의 마오마오는 특히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독백은 느리고 또렷했다. 후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말투가 고풍스러웠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천천히, 또박또박. 독약을 감별하거나 병을 진단하는 장면에서 마오마오는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나는 그 독백을 수십 번 들었다. 「やはり……(역시……)」로 시작하는 그 중얼거림이 귀에 각인되었다.
야하리. 역시. 예상대로. 生각했던 대로.
그 단어 하나를 건져내던 날, 나는 마치 발굴 현장에서 유물을 찾은 고고학자 같았다.
〈귀멸의 칼날〉에서는 감정 언어를 배웠다.
렌고쿠 상주의 마지막 장면, 「うまい!(맛있어!)」라고 외치며 도시락을 먹던 그 목소리. 죽음을 앞두고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그 사람이 「心を燃やせ(마음을 불태워라)」라고 외칠 때, 나는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울었다. 그런데 그 대사가 통째로 외워졌다. 슬픔이 언어를 붙잡는다.
〈
주술회전〉의 고조 사토루는 뭔가를 설명할 때 특유의 리듬이 있다. 「そういうことだよ(그런 거야)」 「わかった?(알겠어?)」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가볍게 던지는 그 말투. 10대인 아이들과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따라 했더니 딸아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엄마, 발음 진짜 고조 같아."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조의 말투는 내 입에 박혔다.
언어는 맥락으로 산다.
학원에서 배운 문장은 교실에 두고 나오는 순간 증발하지만, 애니에서 건진 단어는 장면과 함께 저장된다.
〈행복한 결혼〉의 미요는 말수가 적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녀가 「……ありがとう(……감사해요)」라고 말할 때의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단어의 무게를 느낀다. 감사함이 이렇게 조용하게 들릴 수도 있구나. 같은 아리가토우인데, 캐릭터마다 질감이 다르다.
〈겁쟁이 페달〉에서는 숫자와 함께 고함을 배웠다. 언덕을 오르면서 「まだいける!(아직 갈 수 있어!)」 「離さない!(놓지 않을 거야!)」 간단한 단어인데, 온몸에 힘이 실려 있어서 뇌리에 박힌다. 자전거 레이싱 애니를 보면서 의지를 배우는 것인지, 일본어를 배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둘 다 맞는 것 같다.
마흔 여덟에 언어를 배우는 일은, 속도가 느리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교육 전문가다. 배움의 원리를 알고, 학습 전략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외국어 앞에 서면, 이론은 달아나고 좌절만 남는다. 머리로는 알지만 귀가 안 따라주는 그 간극. 수강생들이 "선생님, 알겠는데 안 돼요"라고 할 때 나는 공감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 전에는 반만 알았다.
이제 완전히 안다.
그리고 그걸 알고 나서부터, 애니를 보는 시간이 달라졌다. 이건 그냥 취미가 아니다. 이건 내 귀를 열어주는 치료다.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고—지금 나는 자막 없이도 대사의 절반쯤은 따라간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강처럼 흘러가지만, 이제는 그 강에서 단어들이 가끔 얼굴을 내민다.
미유키가 웃으며 「面白い」라고 했던 그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