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를 한 바퀴 도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후쿠오카에서 출발해서 나가사키로 내려가고, 구마모토에서 아소산을 지나 유후인으로 빠진 다음, 벳푸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루트. 지도로 보면 규슈의 서쪽 허리를 크게 한 바퀴 감는 모양이다. 7일 동안 달린 거리가 정확히 얼마냐고? 돌아오는 날 렌터카 주행거리계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600킬로미터가 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600킬로 중에서 얼마가 온천을 향한 거리고, 얼마가 하비오프(Hobby Off)를 향한 거리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두 목적을 동시에, 매우 자연스럽게,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추구했기 때문이다.
"유후인 가는 길에 하비오프 있어?"
출발 전날 밤, 아들이 북오프 앱을 열고 물었다. 나는 구글맵을 켜서 확인했다. 히타(日田) 근처에 하드오프, 거기서 30분 더 가면 유후인 직전에 하비오프. 완벽했다.
"두 군데 다 들를 수 있겠다."
"온천은요?" 남편이 끼어들었다.
"유후인 들어가서 온천 먼저 하고 나오면서 하비오프. 동선 완벽해."
딸이 이미 메모장을 열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짬뽕 먹는 거 맞지? 짬뽕집 근처에 북오프 있나 봐봐."
남편만이 조용히 이 가족을 바라보았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피규어'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다. 이제는 스파이 패밀리 로이드 포저 피규어를 직접 온라인 경매에서 낙찰받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뽕집과 북오프를 하나의 문장으로 묶는 우리 가족이 가끔은 경이롭게 느껴지는 눈치였다.
"짬뽕집 옆에 북오프는 없고," 내가 검색 결과를 확인하며 말했다. "짬뽕집에서 15분 거리에 하드오프가 하나 있네."
"오케이." 딸이 메모에 추가했다.
이렇게 규슈 일주 계획이 완성되었다. 여행사에서 만들어준 게 아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온 것도 아니었다. 온천 일정과 하비오프 재고 현황을 동시에 보면서, 온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짜낸 우리만의 루트였다.
다음 날 아침, 후쿠오카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짐 칸이 넓은 미니밴을 골랐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뒷자리에서 협상이 시작되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오늘 앱 담당."
"앱 담당이 뭔데?"
"북오프 앱이랑 구글맵 동시에 보면서 가는 길에 하비오프 뜨면 알려주는 거."
"그거 엄마 하면 되지 않아?"
"엄마는 아빠한테 길 알려줘야 하잖아."
아들이 졌다. 그리하여 아들은 이후 7일간 뒷자리에서 북오프 앱을 붙들고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하는 '정보요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딸이 선언했다.
"자, 규슈 일주 시작. 게임 한 판 하자. 말 많이 한 사람이 지는 거."
"그 게임은 금방 끝나, 엄마가 불리해." 아들이 바로 반박했다.
"그럼 달라는 거 아무것도 사지 않기 게임은?"
또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피식 웃었다.
나가사키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길고 느긋했다. 사가(佐賀) 평야를 지나는 구간에서 차창 밖으로 논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일본에 오면 왜인지 모든 평범한 것들이 다 예뻐 보인다. 전봇대조차 일본 것은 다르게 생긴 것 같은 착각. 덕후 기질이 풍경 감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 히라도 하드오프 재고 확인됐어. 겁쟁이 페달 마키시마 넨도 있대."
아들의 목소리가 들뜠다. 나는 구글맵을 켰다. 히라도는 나가사키현 북쪽 해안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우리 루트에서 30분 정도 벗어난 거리였다.
"30분이면 갔다 올 수 있지?"
"짬뽕 먹고 가면 되잖아."
남편이 조용히 물었다. "히라도가 어딘데?"
"나가사키 가는 길."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넓게 보면 가는 길이야."
나가사키 짬뽕은 실제로 나가사키에서 먹어야 맛있는지, 아니면 어디서 먹어도 비슷한지—이 오래된 논쟁에 대한 내 결론은 이렇다. 나가사키에서 먹어야 맛있다. 논거는 단 하나, 그날 우리가 먹은 짬뽕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기 때문이다.
항구 근처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빨간 글씨로 '長崎ちゃんぽん'이라고 씌어 있고, 점심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줄이 있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북오프 앱을 보고 있었고, 딸은 이미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고 있었고, 남편은 눈을 감고 쉬고 있었고, 나만 두리번거리며 항구 풍경을 구경했다.
짬뽕 국물 한 숟가락에 여행의 피로가 싹 내려갔다. 이건 진짜였다. 묵직하고 뽀얀 국물, 두툼하게 썰린 어묵, 오도독 씹히는 목이버섯. 아이들도 말없이 그릇을 비웠다. 남편이 "야, 이거 진짜 맛있다"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여행 전체를 정당화하는 느낌이었다.
배가 부르고 나서야 딸이 입을 열었다.
"하드오프 가자."
맞다. 마키시마 넨도.
히라도에서 결국 찾지 못한 마키시마 유스케는 구마모토 가는 길에 있는 하비오프에서 발견되었다. 매장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아들이 진열장 앞에서 멈추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나를 부른 것, 그리고 내가 달려가서 진열장 유리에 얼굴을 들이민 것, 그 안에 겁쟁이 페달 마키시마 유스케 넨도로이드가 박스째로 앉아 있던 것이다.
"얼마야?"
아들이 가격 태그를 들여다봤다. "2,200엔."
박스 상태는 깨끗했다. 나는 직원을 불렀다. 일본어로,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모든 것을 동원해서 "꺼내볼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직원이 웃으면서 "もちろんです(물론이죠)"하고 꺼내주었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한 상태였다.
아들이 계산대에서 직접 계산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은 조금씩 일본어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いくらですか(얼마예요)"가 "すみません(실례합니다)"이 되고, 나중엔 "これ、ください(이거 주세요)"까지. 사람은 필요하면 배운다. 정말이지.
구마모토에서는 말고기 육회, 바사시(馬刺し)를 먹었다. 구마모토의 명물이다. 얇게 썰린 붉은 말고기에 생강과 마늘을 얹어서 간장에 찍어먹는 방식인데—처음엔 아이들 둘 다 머뭇거렸다. 말을 먹는다는 개념이 아직 낯선 거다.
"한 점만 먹어봐. 싫으면 내가 다 먹을게."
딸이 조심스럽게 한 점을 집었다. 씹었다. 표정이 바뀌었다.
"어? 맛있다."
"그럼 내 거 먹지 마."
"야."
남편은 이미 두 번째 접시를 시키고 있었다. 아소산 가는 길에 들른 식당이었는데, 창밖으로 구마모토 평야가 펼쳐지는 자리에 앉아서 말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는 아주 잠깐 중고매장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먹었다. 맛있어서.
벳푸(別府) 온천은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벳푸는 온천 마을이라기보다 온천 도시다. 시내 곳곳에서 흰 수증기가 올라오고, 공기 자체가 유황 냄새를 풍긴다. 이름난 '지옥 온천' 여덟 곳 중에서 우리는 바다를 닮은 코발트블루색의 '우미 지고쿠(海地獄)'와 새빨간 진흙이 부글거리는 '치노이케 지고쿠(血の池地獄)'를 골라 둘러봤다. 아들이 "이거 진짜 지옥처럼 생겼다"고 했고 딸이 "주술회전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뭘 봐도 애니메이션과 연결 짓는 우리 가족의 독특한 감수성이다.
그리고 숙소 온천탕에 들어갔을 때.
뜨거운 물에 몸이 잠기는 순간—진짜로 여행 중이라는 실감이 났다. 노천탕 너머로 어둑해지는 벳푸 시내가 보이고, 수증기 사이로 별이 하나씩 나타났다. 딸이 옆에서 "온천 너무 좋다" 하고 작게 말했다.
그렇지, 이것도 좋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뜨거운 물속에 잠겨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 벳푸 시내 하비오프에 미유키 피규어 재고가 있다는 북오프 앱의 안내를. 상태 양호, 박스 있음, 3,300엔.
이게 덕후의 온천 여행이다. 몸은 탕 안에 있고 마음은 이미 진열장 앞에 서 있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남편이 물었다.
"오늘 어디 가?"
나는 대답했다.
"하비오프."
그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면서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규슈 일주 7일째 되는 날 저녁, 후쿠오카 공항 근처 렌터카 반납소에서 주행거리를 확인했다. 613킬로미터.
트렁크 안에는 피규어 박스가 쌓여 있었다. 미유키 카즈야, 마키시마 유스케, 마오마오, 로이드 포저, 고죠 사토루—규슈 전역에서 모셔온 이차원의 식구들. 아들은 겁쟁이 페달 만화책을 무릎에 안고 잠들었고, 딸은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나는 창밖을 봤다. 후쿠오카의 야경이 흘러갔다.
짬뽕도 먹었고, 말고기 육회도 먹었고, 벳푸 온천에도 들어갔고, 아소산 가는 길에서 구름 아래 초원을 봤다. 그 모든 것들 사이사이에 우리는 하비오프를 들르고 북오프를 뒤지고 만다라케를 헤맸다. 어느 것이 여행의 목적이고 어느 것이 곁다리였는지—이미 기억이 섞여버려서 구분이 안 된다.
아마 그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