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니지만 어둠이 내린 저녁, 휴대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예전 같았으면 손가락은 고민도 없이 답장을 쳤을 것이다.
“네, 괜찮아요.”
피곤이 어깨를 짓눌러도, 마음속에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먼지처럼 부유해도 나는 늘 타인에게 ‘빈틈없이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내 마음의 지도가 어디쯤 해져 있는지는 모른 척하는 것이 익숙했다.
그런데 그 날은 문득 손가락이 멈췄다.
오늘 하루가 내 안에서 아직 조용히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태로 전화를 받는 것은 상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아주 작게 고개를 들었다.
낯선 용기였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요. 내일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전송 버튼을 누른 직후,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운해하면 어쩌나, 내가 너무 차가웠나 하는 미안함이 습관처럼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1분, 2분... 정적이 흐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대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몽글몽글한 안도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먼저 살폈다.
남들에게 ‘참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던 일을 오늘 비로소 멈춘 것이다.
오늘은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름을 불러본다.
“소연아!! 오늘 네 편이 되어줘서 고마워. 정말 잘했어.”
나를 지켜내는 일은 사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정해준 ‘착한 사람’의 틀을 깨고 나와, “지금은 내가 나를 돌볼 시간입니다”라고 나직이 속삭이는 그 조용한 용기 하나면 충분했다.
이 글을 적는 지금, 마음이 한결 단단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를 지켜낸 오늘의 이 작은 선택이, 내일은 타인을 더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오늘 밤, 나는 나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어 잠자리에 들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