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만난 나의 응원단

by 코난의 서재

스무 살에 그 사람을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어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삶이 얼마나 길어질지 잘 모르던 나이였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엄격한 집에서 자랐다.
게다가 동생이 지적장애가 있다 보니 집안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모였다. 부모님이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잘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도, 행동도, 선택도.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

그래서인지 나는 늘 조금 긴장한 채로 살았다.
무언가를 할 때도 먼저 생각했다.

‘이게 맞을까.’
‘괜히 했다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스무 살에 만난 그 사람은 조금 달랐다.

내가 뭔가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 한참 듣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해 보면 되지.”

너무 쉽게 말해서 처음에는 조금 황당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는 또 웃었다.

“그래도 당신은 할 것 같은데?”

그 말은 거창한 격려도 아니었고, 대단한 조언도 아니었다.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건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삶이 점점 복잡해졌을 때도 그 사람은 여전히 비슷했다. 내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면 늘 같은 말을 했다.

“재밌겠다. 해 봐.”
“당신 그런 거 잘하잖아.”

그리고 가끔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안 되면 또 다른 거 하면 되지 뭐.”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웃음이 났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그 사람은 늘 괜찮다고 말해 주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도 조금 변했다.

예전 같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들을
이제는 “일단 해 보지 뭐” 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엄격한 집에서 자라
늘 기대를 안고 살아야 했던 나에게

이 사람은
처음으로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이었다.

“괜찮아. 그렇게까지 완벽하지 않아도 돼.”

스무 살에 만나
서른 해를 함께 살면서

나는 알게 됐다.

인생에서 큰 응원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옆에서 웃으며 이렇게 말해 주는 것.

“해 봐.”
“잘 될 거야.”

그래서 오늘은 조용히 말해 본다.

○○아,
삼십 년 동안 나를 그렇게 응원해 줘서 고마워.

늘 잘해야 했던 나에게
당신은

가끔은 편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 준 사람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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