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반 고흐, 음식과 예술 사이에서 묻는다

“맛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by Concept Varia

“음식에서 맛을 제외하고 그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언어의 장난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음식점은, 고로 맛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겉을 꾸며 말장난을 하거나, 스토리텔링으로 본질을 가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늘 경계해왔다.
음식의 세계에서 ‘맛’은 진실이다.
그걸 부정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믿음을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어느 순간 이상한 회의가 찾아온다.


문학에서 작품성, 회화에서의 무엇


음식의 본질이 ‘맛’이라면, 문학은 ‘작품성’이다.
텍스트의 완성도, 문장의 밀도, 구조와 울림.
그 모든 것이 문학을 문학답게 만든다.

그렇다면 회화는 어떤가?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술일까, 구도일까, 색채의 감각일까?

피카소는 기본기가 뛰어났다.
유년기부터 인체 비례에 능했고,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감각도 비범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결코 ‘기술이 부족한 화가’가 아니었다는 걸.

그렇다면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잘 그리는 것’일까, ‘다르게 그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마음’일까.


본질은 실력인가, 존재의 이유인가


피카소는 생전 최고의 부를 이룬 화가였다.
반 고흐는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둘 다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둘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피카소는 그리는 사람인 동시에,

그는 시대를 활용했고, 세상의 언어를 꿰뚫었고, 그림을 팔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이자 상품으로 만들 줄 아는 감각이 있었다.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아는 사람이었다.
반 고흐는 세상과 어울리는 데 서툴렀다.

하지만 그는 고독하게, 치열하게, 본질만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나는 이 둘의 차이가 단지 ‘실력 이후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 모두가 예술가였지만, 시대는 한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을 통해 ‘본질’이라는 단어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무엇이 본질이며, 본질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시대적 합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본질들


음식의 본질은 ‘맛’이라 배웠고, 문학의 본질은 ‘작품성’이라 배워왔다.
그 기준은 오래도록 흔들림 없는 중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맛이 있어도 기억되지 않는 음식이 있고,
완성도가 높아도 읽히지 않는 글이 있으며,
기술적으로 훌륭해도 외면받는 그림이 있다.

그 반대도 있다.
아주 단순한 요리가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문학이 아닌 글이 더 많은 울림을 주며,
형식보다 이야기가 우선되는 예술이 대세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그렇다면 본질은 여전히 중심인가.
아니면, 중심을 대체하는 무언가가 된 것인가.


시대는 본질을 덜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우리는 기준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 본질인지보다, 무엇이 ‘특별해 보이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음식에서 맛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줄을 서게 만드는 것은 맛이 아니라 ‘이야기’다.
리뷰를 쓰게 만드는 것은 정성보다 ‘화제성’이다.

문학에서 작품성은 기준이지만,
플랫폼에서는 ‘읽히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단단한 문장보다, 짧고 직관적인 메시지가 더 오래 남는다.

회화에서 기술은 기본이지만,
전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어떤 감각이 더 ‘확실히 다르냐’는 것이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그 기준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본질만으론 부족한 시대다.


그렇다면 본질은 끝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본질은 더 이상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맛은 기본이다. 하지만 맛이 기억되기 위해선 구조가 필요하다.
작품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읽히기 위해선 통로가 필요하다.
기술은 중심이다. 하지만 공감을 부르기 위해선 맥락이 필요하다.

본질은 여전히 중심이지만,
그 중심은 이제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진실도, 기술도, 감동도 그저 묻혀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실력인가, 감각인가, 전달력인가.

그것은 여전히 ‘시작의 자리’인가,
아니면 ‘시대에 맞게 길들여져야 하는 어떤 것’인가.


나는 외식업에 몸담고 있다.
맛이 없으면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맛만 있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질을 지키면서도 그 본질이 세상과 닿을 수 있는 언어를 고민한다.

피카소는 그것을 알았다.
반 고흐는 그저 본질을 살아냈다.

나는 어느 쪽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떤 본질을 향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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